그레이스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민음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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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소설이다. 읽기 시작하자마자 몸 상태가 안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손에서 뗄 수가 없었다. 소설의 구성도 흥미를 자극하고.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섞었다는 점에서도 성공을 했다고 한다면, 한 여성의 기구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결론을 섣불리 내리지도 않는다. 결론은 독자의 몫이다. 다만 소설을 통해서 주인공의 목소리를 들려줌으로써 주인공에게 공감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생각은 든다.


어린 시절 가족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 캐나다로 이민 오는 과정에서 죽은 어머니. 그럼에도 가족을 돌보지 않아 겨우 열세 살의 나이에 하녀로 일을 시작하다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되어 종신형을 선고 받은 그레이스.


이 그레이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레이스가 기억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순간을 찾아내려는 젊은 정신의학자 사이먼이 그레이스와 면담을 한다. 이렇게 소설은 그레이스의 이야기와 사이먼의 관점이 교차하면서 진행이 되는데, 각 부가 바뀔 때마다 사건의 기록이나 다른 구절들이 앞부분을 장식한다.


그리고 각 부는 퀼트 패턴의 이름이라는데, 이는 소설이 퀼트를 하듯이 각 조각들을 짜맞추는 식으로 구성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끝까지 읽으면서 과연 그레이스는 살인범일까를 찾아보지만 명확한 답은 없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다만, 그레이스가 처한 그 상황을 통해서 당시 여성, 그것도 하층민 여성들의 생활이 어땠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림자 노동이라는 말이 지금은 흔하게 쓰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게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 그러면서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대가라고는 주인의 선처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단지 월급만이 아니라 몸까지도 탐하는 주인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그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고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겼던 당시의 상황.


그렇다고 상류층에 해당하는 여성들이 당당하게 자신들의 삶을 살았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작가는 그 점을 사이먼이 묵고 있는 집의 여주인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그들의 삶 역시 남편의 삶에 종속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작품에는 여러 죽음이 나오지만 세 여자의 죽음이 의미가 있다. 그레이스의 어머니는 살기 위해서 살던 곳을 떠나 낯선 나라도 오는 도중에 죽는다. 이는 어머니의 삶은 남편에게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장소라도 비참한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남편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죽음밖에 없다.남편에 종속된 삶들이 이르게 되는 종착지. 


다음 죽음은 메리 휘트니의 죽음이다. 그레이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메리. 매사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부잣집 아들과 사랑에 빠져 임신을 하고, 불법으로 낙태 수술을 하고 나서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전형적인 하층민 하녀들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아무리 똑똑해도 자신의 처지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삶에 대한 태도를 그레이스에게 가르쳐준 메리지만, 자신의 삶에는 그런 지혜를 적용하지 못했다. 적용할 수 없는 구조였으리라. 임신시킨 사람에게 청혼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애를 낳아도 자신이 키울 수밖에 없는데, 사생아를 낳았다는 이유로 쫓겨날 가능성이 농후했으니, 이를 비밀로 할 수밖에 없었던 메리. 당시 하녀들이 겪을 수밖에 없던 삶.


이런 메리의 죽음으로 그레이스는 큰 혼란을 겪는다. 실신도 하고. 이것이 이 소설의 복선이다. 위기 상황에서 그레이스는 정신을 잃는다. 기억을 하지 못한다. 낸시와 주인인 키니어가 죽었을 때를 흐릿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세 번째 죽음은 그레이스도 관련된 낸시의 죽음이다. 그레이스가 마지막으로 만난 가정부 낸시. 그레이스와 비슷한 처지지만 낸시는 집주인의 내연녀 역할을 한다. 그것이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까? 오래 가지 못한다. 이를 죽음으로 표현한다. 한데, 그냥 죽음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지배층들의 윤리가 무너진다. 그러니 낸시의 죽음은 질투로 인한 죽음이어야 한다. 하층민들이 벌이는 질투. 상층으로 올라가려고 하는 하층민 여성들이 통상 겪은 결과.


작가는 이렇게 세 죽음을 통해 당시 여성들의 삶을 퀼트처럼 잘 짜맞추어 간다. 여기에 상류층 여성들의 위선을 사이먼의 어머니나, 또 소령의 부인 등을 통해서. 더하여 남성들이 지닌 이중성. 위선들까지도.


읽으면서 계속 추리를 하게 만들지만, 작가는 아무래도 그레이스에게 더 많은 공감을 표하고 있나 보다. 그레이스가 서술자로 등장하는 부분에서 독자들도 그레이스에게 공감을 하게 만들고 있으니.


누가 살인자일까는 중요하지 않다. 그레이스의 삶을 통해서 당시 하층민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과연 그러한 삶이 지금은 달라졌을까 생각을 해야 한다. 어쩌면 그때보다는 보이지 않는 그런 차별이 보이기 시작했고, 보이지 않는 노동들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차별과 그림자 노동이 존재함을 생각해 봐야 한다.


  더이상 이런 그레이스들이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아니, 그래도 그레이스는 살아남았다. 살아남지 못한 그레이스의 어머니, 메리, 낸시들이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소설. 역시 애트우드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소설이다.


  읽으면서 캐나다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고 해서 검색을 해보니, 미국에서 애트우드의 이 소설을 원작으로 드라마로 만들었다고 한다.


  드라마를 본 사람들 평가를 몇 살펴보니 상당한 호평들이 많던데... 관심 있는 사람은 드라마를 찾아 보아도 될 듯하다. 


  소설을 먼저 읽고 드라마를 보아도 좋을 듯하고, 드라마를 본 다음에 소설을 읽어도 좋을 듯한데, 난 역시 드라마 쪽은 좀 거리가 멀어서 이렇게 소설로만 읽어도 좋은 소설이었으니...


<사진 출처> 넷플릭스/미드/그레이스(Alias Grace)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시녀 이야기],[증언들],[미친 아담 3부작 -오릭스와 크레이크, 홍수의 해, 미친 아담]에 이어 정말 애트우드 소설에 감탄을 하게 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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