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 - 전6권 세트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한기찬 옮김 / 황금가지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읽어봐야지만 하다가 미루고 또 미뤘던 소설. 반지의 제왕. 영화를 먼저 보아서 그런지, 굳이 소설을 읽을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에 선뜻 손에 잡지 못했던 소설이다.


그러다 영화와 소설이 같지 않음을, 서로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옴을 알고 있으면서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톨킨의 이 작품을 르 귄이 엄청나게 칭찬하고 있으니, 안 읽을 수가 없다.


사서 소장하면서 꼼꼼하게 읽으면 좋겠지만, 그렇게까지는 못하고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다. 예전 판본이다. 예전 판본답게(?) 글자도 작고 빽빽하다. 눈이 피곤하다. 게다가 6권이나 되지 않나.


1부, 2부, 3부 각 2권씩.


오랜 시간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지만, 읽다보면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갔음을 깨닫게 된다. 그만큼 흥미롭다. 물론 읽으면서 영화에서 받던 인물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영화와 다른 점을 찾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놀란 점은 호빗 족의 나이다. 프로도를 어리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는 영화에서 호빗들이 작은 키로 나오기 때문에 착각한 것이다. 소년의 모험이 아니다. 호빗의 나이로 프로도는 50이 되어서야 모험에 나서게 된다. 


함께 모험에 나서는 샘이나 메리, 피핀 역시 어린 나이라고 할 수 없고. 하지만 나이가 중요하랴? 자신의 공간을 떠나지 못했던 존재가 다른 공간을 여행한 다음에 다시 돌아오게 되는 성장소설의 구조라고 해도 좋다.


환상적인 장면이 많이 나와 환상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인간이 중심이 된 세상만을 생각하지 않고, 인간이 지금처럼 문명을 이루지 않고 살던 시대, 자연과 공생하면서 살던 시대를 생각하면, 이 소설에 나오는 환상적인 장면들은 어떻게 우리 인간이 자연을 떠나게 되었나를 생각할 수도 있게 한다.


그래서 엔트 족들이나 요정들의 이야기를 그냥 환상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이제는 자연과 소통을 할 수 없게 된,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소설에서 1기, 2기, 3기라고 시대를 구분하고 3기가 반지의 시대라고 하지만, 이 반지의 시대는 아직 인간이 자연과 분리가 되지 않은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 반지의 시대가 지나면 인간의 시대가 되고, 자연은(요정이나 엔트와 같은 다른 존재들은) 뒤로 물러나게 된다.


이 장면을 읽을 때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에서 동물들의 크기가 점점 줄어드는 장면, 인간이 철(총)을 이용해 신을 죽이는 장면이 떠올랐다. 톨킨은 이 소설에서 인간이 죽이지 않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히 그들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인간이 중심인 시대로 흐르게 됨을 보여준다.


반지를 운반하는 사명을 띤 프로도, 그를 수행하는 샘, 그리고 같은 호빗족으로 프로도와 함께 하겠다는 메리와 피핀, 여기에 여행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아라고른(영화에서는 아라곤으로 나온다)과 요정 레골라스, 난장이 김리 그리고 보로미르. 이들을 인솔하는 마법사 간달프.


이야기는 단순하다. 반지를 없애기 위해서 조력자들과 함께 떠난다. 그 과정에서 갈등도 겪고, 어려움도 겪는다. 그러나 결국은 반지를 없앤다. 


단순히 이렇게만 판단할 수가 없음을 소설을 읽어가면서 알게 된다. 반지를 운반하는 여정에 함께 하는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소설은 빌보가 쓴 이야기를 프로도가 이어서 쓰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의 모험이 이야기로 전승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 속에 반지를 운반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프로도는 책을 끝내지 않는다. 책을 끝낼 사람은 샘이다.


프로도가 끝까지 반지를 운반하는데 함께 했던 충실한 조력자 샘. 샘은 호빗 마을에 돌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모험의 끝이다. 영웅들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들의 삶으로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래서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샘의 말로 끝난다.


"자, 내가 돌아왔어."(6권 228쪽)


소설은 위대한 여정을 끝난 인물들의 위대한 삶으로 끝나지 않는다. 혁명은 위대함을 넘어서 일상으로 돌아와 일상에서 행복한 삶을 살 때 완성된다.


파괴된 것들의 재건. 일상성의 회복. 여기에 영웅은 퇴장해야 한다. 소설에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프로도로 끝맺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가 이야기를 완성하지 않고 샘에게 다음 이야기는 샘의 이야기라고 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이런 점에서 왕이 된 아라고른으로 이야기를 끝맺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위대한 마법사인 간달프도 또 반지 운반자였던 프로도도 모험의 시대가 끝났을 때 물러나야 한다. 그들이 그렇게 모험을 한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일상의 회복 아니겠는가?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살아가는 사회. 그런 모습이 일상이 된 사회여야 한다고 톨킨은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러므로 그들의 모험은 일상에서 끝나야 한다. 그러니 샘이 자신이 돌아왔다고 하는 말로 소설을 끝맺을 수밖에 없다.


반지를 없애고 사우론을 퇴치하면서 소설이 끝날 거라 생각했는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호빗으로의 귀환. 그리고 호빗에서의 또다른 일들. 그 일들이 끝나고서야 비로소 일상이 회복됨을 보여주고 있어서 더 좋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그냥 읽어보면 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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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이카 2023-07-29 1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kinye91님, 안녕하세요? <밤의 언어>에서 르 귄이 자신보다 어린 나이에 톨킨을 알게 된 사람들을 부러워 한다고 고백했었지요. 르 귄의 <반지의 제왕> 해석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늘 kinye91님이 읽으신 것을 몇 년 후에 읽고 있더라구요. 어쩌면 이 <반지의 제왕>도 몇 년 뒤에는 읽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kinye91 2023-07-29 13:22   좋아요 1 | URL
에로이카 님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르 귄의 말을 조금 바꾸면 저는 조금 더 젊은 시절에 르 귄의 작품을 읽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요. 소설도 또 다른 글들도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르 귄이 말한 작품들을 읽고 싶어지기도 했고요. 저 역시 르 귄이 말한 작품들을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