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이번 호를 읽으면서 무엇을 느꼈지?


  편집자는 편집자의 말에서 귀여움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표지는 확실히 귀엽다.


  귀여움은 마음을 풀게 한다. 마음을 열게 한다. 상대를 받아들이게 한다. 그러니 귀여움은 상대와 잘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한다.


  빅이슈 역시 딱딱한 잡지가 아니다. 빅이슈에 소개되는 달달한 디저트들이 얼마나 많은가? 꼭 음식점 이야기가 아니다. 소개되는 디저트들도 달달하지만, 한 꼭지 한 꼭지에 달달한 이야기들이 많다.


어떨 때는 쓴맛을 느끼게 하는 글들도 있지만, 그 글들이 지닌 쓴맛은 결국 우리 모두가 단맛을 느끼며 살게 하기 위한 애피타이저다. 전채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생의 단맛은 무엇일까?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가는 것일까?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간다와 자신'만'의 인생을 잘 살아간다는 것은, 단 한 글자 '만'때문에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다.


빅이슈는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가게 하고자 하지만, 자신'만'의 인생을 잘 살아가게 하는 잡지는 아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간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번 호에서 편집자가 말하는 '귀여움'을 이렇게 해석했다. 우리의 우리 인생을 달달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 인생이 달달해질 수 있을까?


'만'자를 떼어버리면 된다. '만'자를 떼어버리려면 바로 이런 자세...


그저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 자기의 길만큼이나 상대의 길도 귀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 영화 속 관장의 말처럼 "재능은 없지만 인간적인 기량이 있"는 "정직하고 솔직하고 아주 좋은" 사람들. 그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들. (정지혜. '자기의 길을 만들어가는 힘'에서. 17쪽)


바로 이렇게, 자기만큼 다른 사람도 귀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나만 최고가 아니라는 생각, 모두가 최고라는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살면 된다.


어떻게 인정할까? 우선 알아야 한다. 알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 노력 중에 책이 있다. 책은 인간 문명이 발생한 이래 우리와 함께 해오지 않았던가. 전자기기로 손쉽게 읽을 수 있게 된 지금도 종이 책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종이 책이 지닌 물질성 때문이다. 


읽으면서 손에 감촉을 느끼고, 그 읽는 시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시간. 또 그 시간을 통해서 책 속에 있는 글자들이 글자들이 아니라 인생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느끼는 순간.


세계 명화라고 하는 그림 중에 책 읽는 그림들이 있다. 그 그림들을 귀엽다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게 하는 그림들. 


그렇다고 아무 책이나 그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역할을 하는 책. 세상을 바꿀 희망을 주는 책들.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이야기가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꿈을 꾸게 하고 싶어요. 희망 없는 시대일지라도 책은 분명 긍정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정규환, '베스트셀러가 되고 싶어-김수인 출판 마케터'35쪽)


책이 간접 경험을 준다면, 사람과 사람이 만나 대화를 하면서 서로 마음을 열어야 잘 살 수 있다. 어떻게 마음을 열까? 앞에 나온 이야기처럼 상대를 인정하면 된다. 인정하는 방법을 모르겠다면 이번 호에 나온 이 방식을 써보면 좋겠다.


경상도식 화법은 제게 반면교사로 사용됩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일 때는 뭐든 그와 반대로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가 남이가?'에서 시작되는 말하기를 '우리는 남이다. 그러니 더욱 조심해야 한다.'로...(정문정, '충격 요법의 언어에서 친절한 언어로 나아가기'에서. 47쪽)


즉, 직설적인 말하기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상대를 존중하는 말하기를 하는 것, 직설적이라도 상대와 교감이 되면 별 문제가 없지만, 그런 교감이 있는 상대에게는 어떤 말을 해도 통할 수가 있으니, 굳이 말하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말하기 방법을 고민할 때는 나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다. 다른 관점을 지닌 사람과 이야기할 때 위에 나온 방법을 사용하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이런 자세를 지니기 위해서는 교육을 받을 때 몸과 몸이 교류를 하고, 마음과 마음이 교류를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브레이킹이라고 '브레이크 댄스'가 교육과정에 들어왔다고 하는데, '탱고'를 비롯한 춤들도(학교 체육시간에 배운 무용과는 다른 의미로) 들어와야 한단 이 말... 춤을 배우는 아이들. 모습을 상상하니 귀엽다.


다른 성별과 교류하고 관계 맺으며 서로에 대한 존중을 학습하게끔 하는 것,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는 하나의 방법 아닐까?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게 하고 관계 속에서의 균형을 배우게 돕는 탱고를 공교육 과정에 두는 일 역시 그런 노력의 일환이 될 수 있겠다. (최서윤, '탱고 공교육을 꿈꾼다'에서 59쪽)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춤은 최서윤의 말처럼 작용한다. 내 중학교 시절, 남녀공학, 합반이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교장 선생님이 남녀 간, 또 학생 간 서먹함을 없애야 한다고 도입한 교육방법이 '포크댄스'였다. 어떤 종류의 춤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파트너를 바꾸며 추는 춤이었음은 기억나는데...


수업을 오전에 마치고 오후에는 일주일 동안 각 반에서 포크댄스를 추도록 했다. 무려 일주일이나! 지금은 아주 짧은 시간 같지만 당시는 아주 긴 시간이었고, 수업을 하지 않고 오후 2시간 정도를 포크댄스를 추면서 남녀가 또는 남남이 손을 마주잡고 움직인 그 시간은 우리들에게 서로를 어색해 하지 않게 하는 시간이었다.


그것이 꼭 포크댄스가 아니어도 괜찮을 터. 탱고든, 살사든, 아니면 다른 스포츠댄스든 함께 하는 활동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활동들이 서로 마음을 열게 하지 않을까? 서로에게 귀여움을 발견하는 시간을 갖게 하지 않을까? 이렇게 해서 귀여움을 발견하게 되면, 그 자체로 이미 마음이 열려 있고,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할 수 있다는 말이 되니, 다른 교육적 효과보다 좋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빅이슈가 우리의 삶을 달달하게 만들어주는 '전채 요리(애피타이저)' 역할과, 삶의 달달함을 끝까지 느끼게 해주는 '디저트(후식 요리라고 해야 하나?)' 역할까지 해주고 있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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