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김연수 소설에는 어떤 특징이 있다. 사회 문제를 다루면서도 개인을 놓치지 않고, 또한 사랑이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랑이 서로를 파멸로 이끌기도 하고, 구원으로 이끌기도 한다. 어쨌든 사람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그의 소설을 통해서 생각하게 되는데...


이 소설에서도 어김없이 사랑이 나온다. 그런데 이 사랑이 남녀간의 사랑이 아니다. 서로 소통이 안 되는 사랑이다. 사랑이 개인을 넘어서야 하는데, 개인에 갇힌 사랑이 이 소설에서 사람들을 파국으로 이끌게 된다.


하지만, 그런 개인에 갇힌 사랑도 개인의 소멸로 끝나지 않음을, 결코 감출 수 없음을, 어떻게든 살아남아 개인에 갇힌 사랑이 어떤 일을 불러일으켰는지를 보여주게 된다.


소설은 현재로부터 시작한다. 입양된 아이. 엄마를 모르는 아이. 여기까지는 상투적이다. 친부모를 찾아 한국에 온다는 설정. 우리가 많이 본 상황 아닌가.


그런데 한국에 와서 상황이 복잡해진다. 진실이 안개 속에 갇힌다. 김승옥 소설 '무진기행'처럼 짙은 안개가 친엄마를 찾는 여정을 가린다.


그 안개는 세월이 만든 안개가 아니다. 사람들이 만든 안개다. 사람들이 굳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과거다. 그러니 그들은 가린다. 소설 속에서는 이를 매생이국에 빗대어서 이야기하고 있다. 겉으로는 별로 뜨거워 보이지 않으나 속은 엄청 뜨거운 매생이국.


엄마를 찾아 온 이야기가 지나면 엄마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첫번째 장의 주인공은 이제 '너'로 나온다. 그리고 엄마의 과거이야기. 다음은 엄마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 마지막 부부분에서는 양관의 주인이 된 또 다른 남자의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통해 소설은 진실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간다. 그러나 안개는 완전히 걷히지 않는다. 그 안개 속에서 또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은 바로 독자의 몫이라는 듯이.


소설 속에 나온 조선소 노동자들의 파업.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겪었던 문제다. 이 파업을 둘러싸고 깊은 심연이 생긴다. 서로 건너갈 수 없는 심연.


파업 중에 노동자들이 사망하고, 그 사망원인을 한 사람에게 전가한다. 그 역시 견디지 못하고 투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둔 아이들의 개인에 갇힌 사랑이 서로를 더 견디지 못하게 한다.


여기에 또다른 소통 불능의 집. 양관이 등장하고. 하지만 양관은 소통불능의 집에서 소통의 집으로, 서로 건널 수 없게 된 심연을 건널 수 있게 하는 날개 역할을 하게 된다. 심연 속에 갇힌 외로움을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이 양관이다. 


말들을 모아 들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 즉 말을 가두지 않고 날아다니게 하는 것. 양관은 바람의 말 아카이브가 된다. 이렇게 엄마를 찾아온 카밀라는 결국 엄마를 만난다. 거기까지다. 그 이후는 읽는 사람들이 상상해야 한다.


입양과 파업과 죽음. 그리고 아버지를 찾는 과정이 교차하면서 소설은 점점 흥미를 더해간다. 각자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장면. 


제목과 연결지어 생각해 본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다음에는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고 소설이 시작되기 전에 나온다.


소설을 읽다 보면 죽은 엄마의 말로도 이 구절이 나오는데 (228쪽) 세월이 흘러도 사라질 수 없는 사랑이다. 그리고 이 사랑이 결국은 심연을 건너게 한다. 사랑은 사람으로 하여금 심연을 건널 수 있게 날개를 만들어준다.


양관이 바람의 말 아카이브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흥미진진하게, 부모찾기라는 서사로 읽을 수 있지만(엄마는 찾았지만, 아빠가 누구인지는 읽는 사람이 추측해야 한다), 그보다는 무언가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사랑으로 심연에 빠질 수도 있지만, 다시 사랑으로 심연에서 빠져나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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