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학교 교육을 무려 12년 이상이나 받았는데, 과연 내가 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무인도에 떨어진다면 나는 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없이, 현대 기술이 만들어낸 도구들 없이 무인도에 있다면, 어떻게 살아남을까?
불도 못 피울텐데. 무엇을 잡을지도, 또 어떤 식물이 먹을 수 있는 식물인지도 모르고, 잠자리를 마련하는 일도, 주변의 위험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일도 못할텐데.
아니 현대 도구를 가져갔다고 해도 과연 그 도구들을 잘 쓸 수 있을까? 도구들을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름이 필요한데, 기름이 떨어지면, 전기가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막연히 학교에서 배운 기술들이 그야말로 내 삶을 유지하는데 어떤 도움도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인생은 그렇게 책에서만 배울 수 없을텐데... 자신이 혼자 살겠다고 하는 일도 힘든 일이지만,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자신을 비우는 일도 어려울텐데.
살아가기 위한 기능, 또 함께 살아가기 위한 자세를 과연 배웠던가. 그냥 제멋에 겨워 살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
지금부터라도 나만이 아니라 함께를 생각하는, 그리고 내 삶을 내 스스로 유지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
제목만으로도 마음을 끄는, '새로운 인생'이라는 시. 물론 이 시가 앞에 이야기한 것처럼 해석되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누구나 새로운 인생을 꿈꾸지 않나.
그런데 그 새로운 인생이 위로 위로, 일과는 상관없는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밑으로 밑으로, 일과 관련있는 곳으로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새로운 인생 아니겠는가.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인생. 그래 일본의 어느 학자가 벌레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지 않은가. (김해자가 쓴 '벌레의 눈, 시인의 눈'이란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그렇게 낮은 곳에서 함께 사는 삶. 그런 새로운 인생. 그렇다면 세상이 다르게 보일 것이라는 생각.
새로운 인생
바람이 긴꼬리도마뱀처럼
비닐문을 들치고 들어오나 보다
어둠이 미끈거리며 목덜미를 감쌀 무렵
방안에 웅크렸던 나라는 짐승을 본다
사람 하나였다고 믿었던 나의
껍질을 빈방에 결박해 두고
신원미상의 얼굴을 하고선
행자승처럼 새벽에 일어나
밥을 지어먹고
신발끈을 매고
쫓기는 사람처럼 집을 나선다
나는 당분간 일용노동자로 살기로 했다
내 등을 떠밀어 다오
서투른 몸동작으로
삽과 괭이와 해머와 철사와 커터 들을 다루는 나를
이제야 그들의 눈빛에서
체념과 순응의 본능을 읽을 줄 알게 된 나를
내 어머니에게 이런 나를 보여주고 싶다
새로운 인생을 향해
꿀꺽 침을 삼키는 나를
송태웅, 새로운 인생, 산지니. 2018년. 20-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