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인생 열린책들 세계문학 275
카렐 차페크 지음, 송순섭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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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색깔을 합치면 검정이 된다. 여러 빛을 합치면 하양이 된다. 검정을, 하양을 하나라고 할 수 있을까?


검정 속에는 수많은 색들이 들어 있다. 하양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단순히 검정을 보면서 참 단순하다고 할 수는 없다. 


색을 인생으로 바꾸면 마찬가지 말이 성립된다. 삶을 거친 많은 일들을 합치면 하나의 인생이 된다. 참으로 평범한 인생이다. 


소설은 그렇게 시작한다. 한 사람이 죽는다. 죽은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정리한 글을 남긴다. 그 글을 읽는다. 글 속에서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가 죽 펼쳐진다. 별것 없다. 그것이 다다. 그런데, 소설이 중간을 넘어서면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면서 문득 이야기가 다양하게 분화된다.


평범한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보이는 삶 속에 보이지 않는 삶들이, 기록된 삶 속에 기록되지 않은 삶들이, 실현된 삶 속에 실현되지 않는 삶들이 무수히 많다. 그 많은 삶들이 이게 바로 나라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글을 쓰면서,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면서 자신은 평범한 삶이라고, 남들에게 무난하게 보이는 삶을 삶이라고 여겼던 것과 더불어 너무도 다양한 삶을 살았음을 깨닫게 된다.


별다른 감흥 없이 흘러가던 소설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글의 필체가 단정함에서 흐트러진 모습으로 변해가면서, 하나의 논조로 흘러가던 인생 이야기가 여러 이야기가 겹쳐서 나오면서 흥미로워진다.


인생을 어느 정도 산 사람에게는 "맞아, 이게 인생이었어. 나도 이래."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평범한 삶을 산 내가 있고, 출세를 위해 몸부림치는 억척이가 있고, 또 우울한 내가 있다. 단지 세 인생? 


아니다. 더 많은 인생이 있다. 소설에서는 여덟가지 인생이 있다고 하는데, 더 많다. 이런 인생 말고도 내 안에는 다른 존재들이 함께 있다. 그러니 이 평범한 인생에는 수많은 인생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인생은 여러 상이하고 가능한 삶들의 집합이며, 그중에서 단지 하나 또는 몇 개만이 실현되는 반면, 다른 삶들은 단편으로서나 가끔 발현되든지. 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213쪽)


소설 속 주인공이 자신의 인생 이야기에서 쓴 말이다. 무난한 삶과 격동적인 삶, 그리고 자신만의 공간으로 도피하고자 하는 삶, 여기에 순간 모든 것을 내던지는 삶, 또 마음 속에 꼭꼭 감추어야 두어야만 했던 일탈에의 추구 등등.


살아오면서 겪었던 일들, 마음들이 소설 후반에 드러나면서, 평범함 속에 감추어져 있던 많은 인생들이 드러나면서 그렇게 우리 인생은 단순하지 않음을 소설은 보여준다.


그럼에도 죽음 앞에서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면 평범한 인생이 될 수밖에 없다. 그 많은 인생들이 합쳐져 하나의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죽음 앞의 삶은 영웅이라고, 천재라도, 기인이라도 모두 평범함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마치 많은 색들이 하나로 합쳐져 하나의 색이 되듯이. 


소설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사람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니 누구도 삶에 대해서 함부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남의 삶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 눈에 보이는 삶말고도 더 많은 삶들이 그 사람의 삶이기 때문이다.


차페크의 평범한 인생, 결코 평범하지 않은, 우리 모두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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