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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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김연수 소설집을 읽으면 맨 처음에 실린 소설에서 이 소설집의 공통점을 찾고자 하는 욕망을 느낀다. 그리고 다른 소설들을 그 틀에 끼워맞추려고 한다. 그러면 안 되지 하면서도 무언가 일관성을 찾으려고 한다.


이 소설집에서는 '암흑물질'에 꽂혔다. 암흑물질, 우주를 이루고 있는 물질인데 아직 밝혀지지 않은 물질. 그것도 우주의 90% 정도를 차지한다고 하니, 빙산이나 무의식을 생각하면 된다. 빙산도 우리에게 보이는 부분은 10%가 채 안 될 수도 있고, 우리 무의식 역시 의식에 비하면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으니...


암흑물질은 분명 존재한다. 그런데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찾지 못함, 이는 아직 우리에게는 알지 못하는 세계라는 뜻이기도 한다. 불가지(不可知)의 세계. 알 수 없으니 말할 수 없다고 하겠지만, 알 수 없다고 말하지 못하지는 않고, 또 말할 수 없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다.


우리 삶이 그렇지 않겠는가? 삶을 보여주는 소설 역시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김연수 소설집을 읽으면서 다양한 삶이 나오지만, 이들 삶은 필연이라고 할 수 없다. 그들이 겪는 일들은 우연들이 겹치면서 이루어진다. 우연들은 예측을 빗나가고, 나중에야 한 줄로 꿰어 그렇구나, 그래서 이렇게 됐구나 생각할 수 있을 따름이다.


소설집에 첫번째로 실린 소설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리고 이 구절이 나를 김연수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을 이 구절에 매이게 만들었다.


'암흑물질은 관측이 불가능하므로 존재를 증명할 수가 없다.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임에 틀림없는, 이 어둡고 비밀스럽고 거무스름한 물질이 우리 우주의 90퍼센트를 차지한다.' (11쪽)


이 구절이 소설집 마지막에 실린 '달로 간 코미디언'과 연결이 된다. 시각장애인이 등장한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은 이렇게 말한다. 역시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무엇. 그것을 생각하게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관장은 자신이 보지 못하게 되면서 시각적 세계가 사라졌듯이 그 시각적 세계 안에서 자신의 몸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 투명인간의 존재, 유령의 존재가 됐다는 걸 알아차렸다.' (275쪽)

 

시각장애인이나 암흑물질뿐이 아니다. 우리 삶은 우리가 모르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그 일부분에 불과할 뿐. 그러니 삶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가 힘들다. 알기 힘들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정해져 있지 않으니, 시각장애인이 사막으로 걸어가듯이 우리는 삶이라는 사막을 매순간 걸어갈 수밖에 없다.


소설집 제목이 된 '세계의 끝 여자친구'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는 세계의 끝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냥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렇게 삶은 다양하고, 모르는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모르는 세계, 그렇지만 막연히 자신에게 다가오는 세계. 우리는 그런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누구도 세계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보다 더 모르는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가고 있기에 지금 눈 앞에 있는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내가 보고 듣고 겪고 있는 현실이 다가 아니라는 것. 그 점을 이 소설집을 통해서 명심하게 된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알지 못하는 세계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음을, 그런 불가지의 세계가 또는 암흑물질이 우리 삶을 둘러싸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삶은 보이지도 말해지지도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달로 간 코미디언'에서 여주인공의 이 말이 바로 우리 인생이 암흑물질로 가득차 있음을 말해주고 있지 않나 한다. 이것이 인생임을.


'나는 아무도 없는 편집실에 앉아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들어. 처음에는 이야기를 따라가지만, 나중에는 감정의 흐름을 지켜봐. 그럴 때면 그들의 인생이란 이야기에 있는 게 아니라 그 이야기 사이의 공백에 있는 게 아닐까는 생각마저 들어. 그런데 편집은 목소리 사이의 공백을 없애는 일이잖아. 목소리와 목소리 사이에서 기침이나 한숨 소리, 침 삼키는 소리 같은 걸 찾아내서 없애는 거야 그러면 이상하게 외로워져.' (237쪽)


우리 인생은 이렇게 편집되지 않는다. 바로 편집되지 않은, 보이지 않는 더 많은 요소들이 우리 인생에 있다. 이번 김연수 소설집을 읽으며 인생이란 참으로 많은 암흑물질로 둘러싸여 있다는 생각을 했다. 불가지의 세계이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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