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신문 토요판에 실린 시. 노회찬. 이 한 시가 이 시집을 불렀다. 그 시를 읽으면서 노회찬이 생각났고, 노회찬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는 시인이라면 다른 시들도 마음에 들겠단 생각을 했다.


  위로 위로, 위만 보고 가는 그런 사람들 이야기가 아니라 아래, 밑에 있는 존재들을 살필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들 이야기가 시에 있으리라는 믿음.


  시집을 펼쳐서 읽는 순간 그 믿음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잘 골랐다는 생각. 시란 이렇게 별 부담없이 자연스럽게 마음으로 들어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시집.


  우연히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고, 무언가를 또는 누구를 칠 수 있을 것 같다고, 분노가 도무지 다스려지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을 만났다. 이 시집을 읽고 있을 때였다. 마침 '산불은 봄비를 이길 수 없습니다'를 읽고 난 후였다.


그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시가 떠올랐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고, 마음에 불이 났구나! 화가 났을 때 열불 난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 시 한 번 들어볼래? 하면서 그냥 읽어 준다. 첫 시행을 읽고 지금 너야. 두 번째 시행을 읽고 지금 네 마음에 불이 났어. 네 번째 다섯 번째 시행을 읽고 그래서 다 태워버렸어. 지금 네가 머리 끝까지 화가 난다고 하는데, 그거와 같아. 온몸이 불덩이로 타버릴 것 같아. 여섯 번째 행을 읽어주면서 마침 옷도 까만 색 옷을 입고 있는 사람에게 봐, 다 타버려서 검게 변했잖아. 근데 어떤 생각이 들지. 


그 생각이 번지면서 마음이 차분해지기 시작하지. 이 시 뒷구절처럼 말이야. 잔뜩 난 화를 가라앉히는 비와 같은 역할. 그것이 바로 한번 더 생각하는 마음이야.


화 난다고 무작정 행동하지 않고 지금 이렇게 앉아서 이 말 저 말 하면서 이 생각 저 생각 하고 있잖아. 마음에 비가 내리도록 하는 거야. 그러다 보면 마음이 가라앉지. 이 시는 지금 그런 네 상태와 같다고 봐. 잘 들어 봐.


산불은 봄비를 이길 수 없습니다


홑동백 한 그루 키웠습니다

꽃잎이 불씨였는지 마음이 불씨였는지

이른 봄 소소리바람 타고 산에 오르더니

뒷산 앞산 할 것 없이 굴참 졸참 할 것 없이

개울 건너 언덕길 솔밭까지 다 태웠습니다

하 붉었던 탓인지 숫제 까맣습니다

재로 변한 잿등 아래 넋 잃고 주저앉아

낡은 서럽 꺼내듯 잔불들을 뒤적여 봅니다

마른 땅 마른 바람 메마른 가슴

미워하는 마음이 욕망이었습니다

집착하는 마음이 산불이었습니다

비가 옵니다, 사나흘 잔뜩 흐리고

오갈 데 없는 마음에 봄비가 내립니다

꽃 덤불 그리며 온 산야를 적십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

산불은 봄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유진수. 바로 가는 이야기는 없다네. 문학들. 2022년 초판 1쇄. 87쪽.


분노에 차서, 증오에 차서, 미움으로 가득해서는 밝고 희망찬 생활을 할 수 없다. 분노를 분노로 해결하지 않고, 분노를 용서로 해결하는 법. 


산불을 봄비로 이겨내는 법. 그것이 필요함을... 마음이 화로 가득찼을 때, 그 화를 누그러뜨리는 비를 불러올 수 있는 힘.


이것이 바로 마음의 힘이고, 이성의 힘이다. 인간이 지닌 강한 힘은 바로 증오를 증오로 대하지 않고, 비껴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데서 온다.


그렇게 이 시, 어쩌면 분노와 미움이 넘치는 사회에서 사랑과 용서가, 그리고 화해가 필요함을 말해주고 있지 않나 싶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분노와 증오는 결국 나를 갉아먹으니, 내가 살기 위해서도 이 분노와 증오의 불을 꺼뜨릴 봄비를 불러올 수 있어야 한다.


그 사람에게 들려주었듯, 아니 그 사람에게 들려주면서 다시 내게 들려준 이 시. 내게도 봄비가 필요함을. 산불은 봄비를 이길 수 없다는 시 구절. 그렇게 다시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음을 생각하면서, 내 마음에 봄비를 불러오겠단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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