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라는 이름의 폭력 - 근현대 한국에서 장애·젠더·성의 재활과 정치
김은정 지음, 강진경.강진영 옮김 / 후마니타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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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밖에 나가면 장애인들을 만날 때가 있다. '가끔'이라고 했다. 늘 보지는 못한다. 관심이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밖에서 만날 수 있는 장애인은 그리 많지 않다.


어느 곳에서는 장애인이 커피를 파는 이동식 커피차 있었고, 어느 때는 출근 길에 시각장애인을 만나기도 했다.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에서 출근하는 장애인을 본 적도 있고. 이게 왜 기억에 남을까? 


많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희소하기 때문에 기억에 남아 있다. 장애인을 일상에서 늘 본다면 그런 기억이 남아 있을까?


학교에서 통합교육을 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많은 장애인들은 분리된 교육을 받고 있다. 그들은 장애인들은 여전히 비장애인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인식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하겠다는 투쟁이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으니...


이 책은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치유라고, 장애인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오히려 장애인들을 분리하고 가두지 않았나, 그들을 정상성의 범주에서 밀어내지 않았나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장애는 치유해야 할 무엇이라고 정의내린 순간, 장애는 정상성의 범주에서 벗어난다. 장애인, 비장애인의 구분이 아니라, 장애인, 정상인의 구분으로 바뀐다. 그리고 장애는 질병으로 치환되고, 질명이므로 치유되어야 한다고, 장애의 치유를 당연하게 여긴다.


장애인도 장애를 당연히 치유받기를 원한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의견보다는 당연이라는, 정상이라는 관점에서 치유를 단행한다. 이 치유가 때로는 장애인의 몸을 위한다기보다는 장애인의 가족이나 보호자들의 편리를 위해서 이루어질 때도 있다. 


또는 사회와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와 우생학이 연결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였다고 한다. 이것은 폭력이다. 비단 이것만이 아니라 장애를 치유해야 할 무엇으로 보고 그들에게는 현재가 없고 미래만 존재한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 역시 폭력이다.


그러므로 장애를 치유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일은 장애의 현재를 생각하기보다는, 과거 또는 미래만을 보는, 현재를 접어놓고 있는 상태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현재를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후천성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과거의 모습을 되살리려는 치유, 또 선천성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장애가 없는 미래를 살게 하려는 치유가 당연하다는 듯이 실행이 된다. 대부분은 그들의 의견을 묻지 않고.


이렇게 장애를 정상의 상대 개념으로 놓으면 장애가 지니고 있는 많은 면을 놓치게 된다. 그들에게도 현재가 있음을,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음을 놓치게 된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장애인의 삶을 과거와 미래로만 재단하지 말라고.. 장애인들의 삶을 현재로 끌어오자고. 그들의 삶, 그들의 의견. 그리고 장애를 치유의 관점으로 가져가는 일은, 장애를 질병으로 인식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장애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듯이,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다양한 모습이 있다. 또한 치유의 수준도 다양하고. 이를 하나로 뭉뚱그리면 안 된다는 것이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 점이다.


치유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폭력이 가해졌는지 문학작품, 영화들을 통해서 분석하고 있다. 또 장애에도 성별 차이가 존재하고 있음도 보여주고 있고. 여기에 장애에 들어갈지 잘 모르겠지만, 한센인들에 대한 이야기. 이들은 대표적으로 분리된 삶을 살게 되었는데, 전염이 안 되고, 유전도 안 된다는 사실이 밝혀진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이들은 분리된 삶을 살고 있음을 이 책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한센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장애를 지녔다고 많은 부분을 포기하게 된 경우가 제시되고 있는데 이는 장애와 정상을 짝으로 놓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가 첨예하게 발생하는 부분이 바로 성(性)에 관련된 문제다. 장애인의 성(성욕, 성교)을 어떻게 볼 것인가. 또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몇 편의 영화를 통해서 분석하고 있다. 성에 관한 부분에서도 많은 경우 장애-정상의 대비가 문제가 된다. 성은 결코 장애와 관련된 정상-비정상의 문제가 아님에도. 


이 책을 읽으면 장애와 비장애가 짝이 되고, 장애는 신체나 정신의 다름이고, 장애는 비정상과 하나가 될 수 없음을 인식하고, 행동한다면, 이 책에서 살펴 온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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