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사람 - 교유서가 소설
김종광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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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소설 하면 이문구가 떠오른다. 충청도 농촌을 배경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썼던 작가. 그런데 지금 농촌이라고 하는 곳이 있을까? 이문구가 소설로 쓴 농촌은 이미 해체되기 시작한 농촌이었다.


산업화라는 명목으로,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우리나라 농촌은 농촌으로 남아서는 안 되었다. 농촌은 도시를 지탱해주는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곳, 그것도 값싼 외국산 농산물에 밀려 돈이 되는 몇몇 작물, 축산업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논농사를 지어도 수익이 남지 않는, 쌀값이 터무니없이 낮아진 상태로 수십 년을 지내와야 하는 곳으로 남았다.


이런 상황에서 농민들은 갈수록 줄었고, 소농이라는 개념은 전문서적에나 존재하는 말이 되었다. 기업농이 존재하기엔 농토가 적었고, 소농들이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기엔 농사를 짓는 사람도 적었고, 먹고 살기도 힘들었다. 


그렇다고 돈이 되는, 소위 환금작물을 재배해도 때에 따라서 흥망이 갈리곤 했으니, 농촌은 농촌의 특징을 살린 채 존재하기는 힘들어졌다. 농사를 짓지 않으면 보상을 해준다는, 소위 농사짓지 말라는 정책이 실시되기도 했으니...


농촌소설이라는 말도 존재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이문구가 소설로 썼던 농촌은 이제 과거의 농촌이다. 하지만 농촌이 아주 없어지지는 않았다. 휴대전화 없이는 살 수 있어도(적어도 목숨을 잃지는 않는다) 식량 없이는 살 수는 없다. 식량 안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없어져서는 안 될 곳이 농촌이지만, 여전히 농촌은 사라져가고 있다. 아이들 울음 소리를 듣지 못한 농촌이 많다고 하니 말이다. 농촌이라는 말로 시골을 대표했다면, 이젠 농촌이든, 어촌이든, 산촌이든 다 시골이라는 말로 통용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시골이다. 도시가 아닌 곳. 사람들이 떠나가는 곳. 돌아오는 사람보다 떠나는 사람이 많은 곳. 귀촌이라고 하지만, 소수일뿐이고, 대부분은 도시로, 도시로 나간다. 태어나는 사람보다 죽는 사람이 월등히 많은 곳. 그곳이 바로 시골이다. 


김종광은 바로 이런 시골을 배경으로, 시골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썼다. 그는 농촌소설이라고 하지 않고, 시골소설이라고 한다. (350쪽)


농촌이라는 말로 국한시키기보다는 농촌, 어촌, 산촌을 아우르는 말로 시골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리라. 그리고 도시 사람들에게 도시가 아닌 모든 곳은 다 시골이다. 


시골소설이란 표현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시골소설에 11편의 소설이 실렸다. 읽다보면 등장인물들이 겹치곤 한다. 하긴 시골에 사람들이 많지도 않으니, 소설 속에서 이 인물들이 다양한 사건을 일으킬 수밖에 없으리라.


그럼에도 시골이라는 말에서 풍기는 퇴색적인 분위기는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이 소설의 배경인 시골은 낙후되어 있다. 노인들만 득시글댄다. 노인들을 대상으로 보일러를 설치하면서, 제대로 수리도 하지 않는 모습도 나타나고, 종합병원이라고 있어도 노인들 건강을 세심하게 살피지 않고, 그냥 하루하루를 버티는 모습도 나타난다.


조류독감이다 구제역이다 하면 별다른 이유도 없이 가축들을 도살하라는 판에 박힌 정책도 나와 우리 사회를 풍자하고 있는 장면이 제법 있어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시골소설에서 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미소를 띨 수도 있지만, 이들의 신산한 삶, 그리고 조만간 사라질 삶들이 무겁게 다가오기도 한다. 


물론 전체적으로 이 소설집은 무겁지 않다. 무거운 분위기도 가볍게, 웃음을 유발하는 해학적인 장면이 많다. 이장 선거를 주요 사건으로 삼고 있는 '여성 이장 탄생기'를 보면 웃음이 나온다.


우리나라 정치 현장을 풍자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시골마을에서도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살아야 하는 까닭'에서는 시골 사람들을 모아놓고 하는 교육이 얼마나 형식적이고 가식적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정작 시골 사람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하지도 못하고(할 수도 없다. 시골 사람들이 면사무소, 또는 군청, 시청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교육해야 한다. 그들은 시골살이를 모르기 때문이다. 농사도 모르는 사람들이 공문에 의거해서 농사 교육을 한다? 우스운 꼴이다), 형식적인 교육으로 서류만 채우는 모습. 그런 형식에 갇힌 공무원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아마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어른들이 돌아가시면 시골도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자연으로 돌아가게 될 수도 있으리라. 살려고 오는 사람이 없으니... 기껏해야 별장을 짓고 가끔 쉬러 오는 곳이 될 수도 있으니.


그런에도 그렇게 되기까지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서 산다. 그들은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좀이 쑤셔서 견디지 못한다. 몸이 아파도 일을 한다. 그렇게 일을 하면서 서로 부대끼면서 살아간다.


그런 시골 사람들의 모습, 이 소설집에 잘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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