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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인류와 만나다 - 인간이 찾아내고 만들어온 모든 소재 이야기
홍완식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21년 10월
평점 :
소재라는 말보다는 도구라는 말이 더 이해하기 쉽다. 호모 파베르라는 말이 도구적 인간이라는 뜻이라고 하니, 도구에 소재가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소재라고만 하면 너무도 막막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니, 이 책에서 말하는 소재를 도구로 바꾸어 생각해도 된다.
물론 이 책은 재료공학에 관한 책이니, 그것도 대학 재료공학과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재료공학의 기본을 알려주기 위해서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고 하니, 소재에 관한 책이 맞다. 재료를 소재라고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재들은 곧 도구가 된다. 소재로만 끝나지 않는다. 인류가 만나왔던 소재들은 인류의 생활에 필요한 도구가 되었다. 이 책은 이렇게 소재들이 도구로 변해서 우리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알려준다. 물론 그 소재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도구가 되었는지도 알려주고 있고.
재료공학이라고 하는 학문은 낯설다. 낯선만큼 어떤 학문일까 궁금하기도 했는데, 화학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학문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고, 우리가 실생활에서 쓰는 수많은 소재들, 도구들에 대해서 연구하는 분야로 인류의 역사, 인류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학문임을 이 책은 알게 해준다.
이 책에 소개된 소재들, 도구들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는 책을 읽어보면 알게 될테니 생략하고, 두 가지를 꼭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트레이드-오프(trade-off)'라는 말. 양면성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동시에 성립하기 힘든 성질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한 쪽이 좋으면 한 쪽은 좋아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이 책에서는 '하나가 좋아지면 반드시 어느 하나가 나빠지는 트레이드-오프 관계가 존재한다'(210쪽)고 말하고 있다.
인류가 사용해온 소재들에 이 말은 꼭 적용이 된다. 소재들을 이용해 인류의 발전을 이룬 도구를 만들었지만, 그 도구로 인해서 피해를 보는 일이 발생한다. 즉, 도구를 만들어내는 일에는 '책임의 윤리'가 따른다. 그것에 대해서 인식하지 않는다면 예상하지 못한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소재 중에 철강을 이야기하면서 철이 단단하면 잘 부러지고, 잘 부러지지 않으면 단단하지 않은 문제에 직면했던 시대 이야기를 하는데, 이것을 인류의 삶 전체로 확장해 보면 트레이드-오프라는 말, 잘 생각해야 한다.
소재의 처음을 돌로부터 시작한다. 강한 동물보다도 연약한 신체를 지닌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 처음으로 활용한 소재가 바로 돌이다. 그냥 돌도 사용했겠지만, 돌을 인간이 사용하기 좋게 가공하기 시작했다. 즉, 소재를 이용해 도구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돌 다음에는 청동, 도자기, 콘크리트와 유리, 비료와 화약으로 넘어간다. 도자기?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을 읽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인류의 역사에서 도자기가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콘크리트와 유리 역시 마찬가지고. 지금도 우리 삶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으니.
이 다음에 철강이 나오고, 섬유와 수지, 플라스틱으로 나아간다. 자연에서 얻었던 물질에서 이제는 인간들이 합성해서 만들어내는 소재로까지 나아가게 된다.
재료공학이라는 측면에서 이 책은 그것들이 지닌 문제점에 대해서는 집중하지 않는다. 그 소재들이 나오게 된 배경과 발전시킨 사람들, 또 소재가 발전하게 되는 과정, 이유 등을 알려주고 있다. 이 소재들에 가려져 있는 부정적인 면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더 공부해야 한다.
소재들의 빛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을 통해서 소재들이 지닌 그림자를 생각하는 자세도 지녀야 한다. 이 책에 나오는 '트레이드-오프'라는 용어를 통해서 그런 자세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다른 하나는 바로 과학자와 어린이의 공통점이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이 공통점이 지금 우리가 누리는 수많은 소재들에 적용되어 왔음을 많은 일화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세상 어린이들이 비슷한 행동 양태를 보이듯이 과학자들 역시 그러했음을.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소재들이 발견(?)되었고, 그것을 우리들이 향유하고 있음을.
어린아이와 과학자의 공통점 중 하나는 끓어오르는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기어이 사고를 치고야 만다는 것이다. ... 어린아이와 과학자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생각만큼 힘 조절이 잘 안된다는 것이다. ... 어린아이들의 호기심은 그들이 앞으로 살아갈 이 세상과의 상호작용을 배우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고, 과학자들의 호기심은 이 세상에서 후대에게 물려줄 새로운 유산을 찾아내는 원동력이다. (317-318쪽)
어린아이와 같은 과학자. 그들의 끊임없는 호기심과 그를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이 지금 우리가 쓰는 수많은 소재, 도구들을 탄생하게 했다.
힘 조절을 못한다는 말, 마음에 와 닿았다. 힘 조절을 능수능란하게만 한다면 발전이 없다. 그냥 주어진 일을 안정적으로 할 뿐이다. 이는 실수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말, 또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이들은 수많은 실수와 실패를 통해서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미리 경험한다. 과학자들은 실수와 실패를 다른 방향에서 생각하면서 새로운 소재를 만들어낸다. 새로운 과학, 새로운 기술을 탄생시킨다.
재료공학에 관한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에서 언급한 많은 소재들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소재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나오게 되었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구체적인 지식도 중요하지만 지식을 구현해 나가는 과정을 익히고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자세를 지니는 일... 이 책을 읽고 무엇보다도 '트레이드-오프'라는 말과 '어린아이와 과학자의 공통점'이 기억에 남는 이유이기도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