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청소년시인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시집... 청소년들에게 시를 만나게 해주고, 그들이 시를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는...


  김선우 시인은 청소년시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왜냐 시는 특정 연령대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시는 누구나 즐길 수 있다. 그런데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시가 되기 위해서는 특정한 연령대에 만날 수 있는 시도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걷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뛰라고 할 수 없듯이, 시를 즐기기 위해서는 시가 즐거울 수 있음을 알려줄 수 있는 시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린이를 위한 시를 동시라고 하고, 나머지를 뭉뚱그려 시라고 한다면, 그냥 어린이와 어른으로 나이 대를 구분하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어린이와 어른 사이에 청소년기를 추가한다. 두 연령 대와는 완연히 다른 연령대가 있음을,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 시기를 청소년기라고 하기도 하고, 사춘기라고 하기도 한다. 그만큼 독자적인 특성을 지닌 연령대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청소년시는 필요하다. 김선우 시인이 청소년시를 쓰게 되는 과정이 어쩌면 청소년시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말랑말랑한 감수성의 시기,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기쁨으로 매일 새로워야 할 아이들이 여전히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시험지옥의 압박에 지쳐 가는 모습을 대면하는 게 힘들어서 피했더랬다.(111-112쪽. 시인의 말에서)


학교는 여전히 꽉 막혀 답답하지만, 놀랍게도, 아픈 학교 안에서도 아이들은 아름답게 자란다. 누가 뭐래도 순수는 아이들의 힘이다. 아이들은 내가 짐작한 것보다 훨씬 힘차고 다양한 걸로 시를 받아들였다. 문학을 문학답게 누릴 기회가 없었을 뿐, 아이들은 물을 빨아들이는 스펀지처럼 해맑고 강력하게 시 혹은 시적인 공기를 흡입했다. (112-113쪽. 시인의 말에서)


자신만의 삶을 향유할 줄 아는 사람들, 자유의 감각을 생의 감각으로 일치시키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예술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특히나 시 읽는 즐거움을 아는 이들은 세상의 속도에 무력하게 휩쓸려 함몰되지 않는다. 세상이 강퍅해도 그들은 자신만의 생의 리듬을 창조하며 스스로를 보호할 줄 안다. (113쪽)


어린이도 어른도 아닌, 인생 전체에서 십 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기이지만 몸과 마음이 폭풍처럼 성장하는 이 수수께끼 같은 시기에 문학이 좀 더 집중해 줄 필요가 있어요. 더구나 그것이 내면의 아름다움과 자유를 발견하게 도와주는 시라면! 좋은 청소년시집이라는 징검다리 위해서 물수제비뜨며 즐겁게 놀아 본 아이들이라면 성인 된 후에도 자기 발로 걸어 시집 서가를 찾을 가능성이 많아지지 않겠어요. 다양한 내용과 재미를 가진 청소년소설들에 비해 일단 시는 창작량 자체가 너무 적어요. (114쪽. 시인의 말에서) 


이런 과정을 거쳐 시인은 청소년시집을 냈다. 그리고 이 시집은 청소년들에게 삶을 살아갈 힘을 주게 될 것이다.


이 시집에 실린 시 가운데 '한 권의 책'이라는 시... 시인이 청소년들에게 들려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


마음속에 책 한 권을 떠올려 봐요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색으로 표지를 만들고요

무지갯빛 테두리 장식도 좋아요


첫 장을 펼쳐요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백지예요

당신의 이름을 거기에 적어요

이 책의 지은이는 바로 당신이니까요


다음 장을 펼쳐요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백지예요

당신이 이루고 싶은 꿈을 적어요

아주 사소한 것도 좋고 큰 것도 좋아요


꿈을 이룬 당신의 모습을 상상해 봐요

가능한 한 자세하게 묘사해 봐요

글자로 적어도 좋고 그림으로 그려도 좋아요

얼굴에 미소가 떠오를 거예요


미소를 지으면 몸이 웃어요

몸이 웃으면 마음이 건강해지죠


꿈을 이룬 당신은 근사한가요?

되고 싶은 모습 그대로인가요?

당신이 묘사해 놓은 책 속의 당신을

감상해 봐요 입가에 가득 미소를 머금고서


하루에 십 분 정도면 충분해요

이 시간 동안 당신은

온전히 당신만을 위한 책을 쓰는 거예요

이제 책을 덮고 가슴에 꼭 안아 봐요

심장 안쪽에 당신의 책을 잘 보관해요


하루에 한 번

마음의 책장을 열어

상상의 책을 꺼내고 집어넣으면서

한 페이지씩 채워 가는 당신 자신의 이야기


당신만의 책을 품고 있는 한

당신은 지지 않아요

웬만한 고난엔 끄떡없는

마음의 힘을 가지게 될 테니까요


그때가 언제이든 빠르든 늦든

당신이 진심으로 꿈꾸는 대로

조금씩 되어 갈 거예요


삶을 당신 편으로 만드는

비밀 무기,

이 한 권의 책을 가슴에 품어요

당신만이 저자인 단 한 권의 책을


김선우, 댄스, 푸른푸른, 창비교육. 2019년 초판 3쇄. 37-39쪽.


천상천하 유아독존... 청소년들이 마음 속에 자신만의 책을 한 권씩 품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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