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읽다가 가슴이 먹먹해졌다. 세상이 얼마나 변했을까? 없는 사람들에게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을까?


  발전은 있는 사람이 더욱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없는 사람들이 결핍을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로 가는 것 아닐까 하는데...


  과연 우리 사회는 얼마나 변했을까? 임성용 시집에 나오는 '30년'이란 시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더 하게 됐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했을 시기에, 노동자들의 안전에 대해서 얼마만큼 변화를 이뤄냈던가.


'저녁이 있는 삶'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이야기가 나온다는 사실은 저녁이 없는 삶들이 많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저녁이 있는 삶은커녕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삶들도 많으니...


     30년


30년 전에 야간고 실습생 영국이는 나사를 깎았다.

아침까지 일을 해야 되는 건 영국이뿐이었다.

영국이는 태핑기에 장갑이 끼었다.

손가락이 잘린 채 그대로 죽은 듯이 엎드려 있었다.


30년 후에 특성화고 민호는 기계에 끼여 죽었다.

민호와 영국이는 혼자 작업을 했다.

30년이 가고 다시 30년이 와도 영국이는 엎드려 있다.

30년 후에 민호가 죽어서 엄마의 통곡 앞에 누워 있다.


임성용, 흐린 저녁의 말들, 반걸음. 2021년. 102쪽.


그래서 시인은 '비극을 위하여'라는 시에서 '나도 언젠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날이 있으리라'(87쪽)고 하고 있으며, 이런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이 많음을 시집에서 다른 시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잘 가라, 세상'이라는 시에 표현된 일들이 현실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구급차는 날마나 우리에게 달려온다 / 우리를 태우고 떠나기 위해 줄지어 기다린다 / 나도 내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 / 나는 내가 이렇게 죽을 줄 알았다 / 잘 가라, 세상!' (85쪽)


그래, 그런 세상을 보내야 한다. 잘 가라고 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세상은 '태우고 떠날 구급차들이 줄지어 기다리는 세상'이 아니라,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이다.


이제는 그런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30년' 전과 후가 같은 세상이 아니라, 달라진 세상... 그런 세상에게 '잘 가라'하고 보내버리는 세상. 그런 세상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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