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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의 일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성경에 나오는 마르타와 마리아 이야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이 왜 예수가 마르타에게 무어라고 하느냐는 질문을 나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마르타가 하는 일은 그림자 노동에 속한다.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동안에 그들이 먹고 마실 것들을 준비하는 마르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른 사람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일을 한다. 그것이 마르타의 일이다.
반면에 마리아는 집에 손님으로 온 예수를 대접하는 일을 할 생각을 하지 않고 예수 곁에 머물며 예수의 말을 듣고 있다. 마르타가 마리아에게 뭐라고 하자, 예수는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누가복음 10:42)고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박서련이 쓴 [마르타의 일]은 둘의 관계를 소설로 어떻게 변형했을까 생각하게 된다. 분명 자매가 나올테고, 한 사람은 남들에게 인정받고 편하게 지내고 다른 사람은 남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는, 그리고 언니가 마르타에 해당하고, 동생은 마리아에 해당하리라고...
그런데 소설을 읽으면서 누가 마르타고 마리아인지 알 수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둘 다 현대 사회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자 노동에 해당하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면 동생인 경아 쪽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린다. 왜냐하면 경아는 많은 봉사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봉사활동으로 인정받고, 또 현대 사회 사이버 공간에서 유명인이 되지만...
유명인이 되었다고 마리아처럼 대우받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마리아는 빼앗기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소설 속 경아는 죽음에 이르기 때문이다. 결국 유명인이 된 경아는 자신의 삶을 빼앗기고 만다.
반면 마리아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당당하게 했을 뿐이다. 빼앗겨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언니인 수아가 마리아?
수아는 성적이 좋다. 우리나라에서 성적이 좋다는 이야기는 남들에게 인정받는다는 의미다. 좋은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른 것들을 무시해도 좋다는 인식이 팽배한 사회가 바로 우리 사회다.
소설 속 경아는 성적이 좋고, 그로 인해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간다. 오히려 남들에게 인정받고 있는 경아가 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본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수아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성취하고, 또 하고자 하는 일도 해낸다. 경아의 죽음에 대한 복수도 완성한다. 그렇다면 누가 마르타인가?
경아? 수아? 읽어가면서 답을 찾으려는 것이 어쩌면 소설 제목에 갇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르타의 일은 수아와 경아라는 자매를 떠나서 여성 모두에게 해당하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남들이 돋보일 수 있도록 묵묵히 일을 해야 한다.
소설 속에서 수아는 성적 때문에라도 당당하다. 당당하지만 삶은 녹록치 않다. 고시원에서 살아가면서 아르바이트로 간신히 돈을 벌고, 임용고사를 준비한다. 반면 경아를 죽인 남성은 어떤가? 그는 약물과 환락에 취해 살아간다. 삶의 방식이 다르다. 그렇다고 모든 남성 인물들이 그렇게 살아갈까? 아니다.
여기서 다시 동생을 죽인 차해경에게 복수를 하는데, 익명으로 나오는 인물이 한 명 더 등장한다. 그 역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니 이름이 밝혀지는 것은 소설의 뒷부분에 가서이고, 소설 내내 익명이라고 불린다.
드러나지 않음, 그것이 바로 마르타의 일이다. 그렇다면 마르타는 누구인가? 바로 우리 사회에서 자신을 화려하게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또는 고학력자임에도 불구하고 카페 매니저를 하는 사람, 성적이 좋아 약대에 진학하고 대기업에 취직을 해도 남 눈치를 보면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 노동을 통해서 자신의 손가락을 잃은 사람(익명으로 나오는 사람은 손가락이 몇 개 없다. 이는 노동으로 잃었다고 유추할 수가 있다)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마르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소설에서 수아나 경아는 모두 마리아가 될 수 있고, 마르타가 될 수 있다.
소설은 자살로 위장된 살인사건을 언니의 관점에서 파헤쳐 나간다. 늘 마리아로 여겨졌던 동생이 사실은 마리아가 아니었음을, 동생 역시 마르타였음을... 하여 여전히 마리아가 되기 힘든 사회, 소설 속에서 예수는 마리아가 함께 배우는 모습을 두둔함으로써 여성들도 주체적으로 배울 수 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고, 익명으로 등장하는 인물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말과 경아의 죽음을 통해서 마리아가 되고자 하는 많은 여성들이, 여전히 마르타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하는 존재로 남게 하려는 사회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 있는 마르타의 일... 아니, 마르타의 일을 하게 암묵적, 명시적으로 강요하는 사회. 그런 사회의 모습을 이 소설을 통해서 만나게 된다.
한번 손에 잡으면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는, 흥미진진하게 사건을 이끌어가는 소설인데... 우선 재미있다. 그거면 됐다.
그래도 여전히 마리아와 마르타에 대한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마르타의 일'이란 제목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