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덴바덴에서의 여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3
레오니드 치프킨 지음, 이장욱 옮김 / 민음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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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소설에 등장한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사실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벌]이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로 잘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와 바덴바덴을 연결시키기는 어렵다.


바덴바덴 하면 사실, 우리나라 88올림픽을 개최지로 선정한 도시라는 사실이 먼저 떠오르는데, 그래서 가본 적은 없어도 이름만은 귀에 익은데, 이번에 이 소설로 다시 도스토예프스키와 연결시킬 수 있어서, 이 도시에 다른 사실 하나를 더 추가할 수 있게 되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머물렀던 도시가 바덴바덴이라고 하니...


이 작품은 소설이다.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사실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팩션이라고 해야 하나, 사실과 허구가 융합된 그런 소설인데, 서술자가 도스토예프스키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한 일들과 서술자 자신의 이야기가 교대로 때로는 겹쳐지면서 펼쳐진다.


그래서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허구인지 구별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러시아 역사도 잘 모르고, 러시아 작가들에 대해서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이 작품에서는 수많은 러시아 작가들, 평론가들이 등장하고 있으니, 더더욱 구별하기 힘들다.


그래도 읽다보면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이 많이 언급되고, 작품 속 인물이 이런 상황과 유사하구나 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또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작가가 소설을 쓰는 과정을 담고 있지 않고, 그가 어려운 환경에서 지내는 모습이 서술되어 있기에, 인간 도스토예프스키를 만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을 읽으면 서술자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존경하고, 그의 발자취를 좇아가고 있지만, 이를 읽는 우리들은 위대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보다는 인간적인, 정말로 화내고 슬퍼하고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도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간 도스토예프스키를 만나게 된다.


그 점이 이 소설의 장점이다. 지금은 위대한 작가로 칭송받는 그가 당시에는 지지리도 가난하고 또 남들에게 제대로 인정도 받지 못하고 있으며, 많지도 않은 돈을 도박장에서 날리는 행동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모습이 소설에서 펼쳐지고 있으니... 신격화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닌 고뇌하는 인간 도스토예프스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한 작가의 흔적을 따라가면서 자신의 소설을 쓰는 일, 이와 비슷한 소설이 최인훈의 화두 아닌가 싶기도 한데, 좀 다르긴 하지만, 최인훈은 조명희의 흔적을 찾는 과정을 소설에서 보여주고 있지 않나.


자신보다 선배 작가의 모습을 소설 속에서 그려내는 일, 또 그런 작가들이 거쳤던 곳을 자신도 거치면서 그가 그곳에서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생각을 했을지, 그리고 그러한 일들이 작품에 어떻게 나타났을지를 생각하는 모습을 이 소설에서 만날 수 있으니...


선배 작가의 행적과 자신의 행적이 겹쳐지면서 펼쳐지는 소설. 그렇게 우리는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지만, 지금-여기에는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서 우리와 함께 하고 있음을 이 소설이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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