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참 자극적이다. '오'라는 감탄사부터... 무엇에 대한 감탄인가? 이때 감탄이 좋은 쪽의 감정일 수도 있지만, 안 좋은 쪽의 감정일 수도 있다. 마음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터져나오는 소리. '오'


  '그자'라는 말에는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 사람'이 아닌 '그자'다. 내가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존재다. 그러니 '그자'라고 한다. 


  '입을 벌리면' 문장이 끝나지 않았는데 끝났다. 앞의 주어인 '그자'와 연결지으면 결코 긍정이 될 수가 없다. '그자가 입을 벌리면' 내게는 해로운 감정, 좋지 않은 일만 생긴다. 그러니 제발 그자의 입을 다물게 하라.


  이렇게 외치고 싶지만 그자는 입을 다물지 않는다. 그자는 끊임없이 입을 벌리고 무언가를 토해낸다. 뱉어낸다. 입은 언어를 제외하고는 안으로, 밑으로 내려보내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반대 역할을 할 때 우리는 무척 부정적이 된다. 싫어하는 마음을 지닌다.


생각해 보라. 입에서 안으로, 또 내려가지 않고 밖으로 위로 나오는 물체들을... 이럴 때 쓰는 말, 내뱉는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도대체 그자는 누구일까? 왜 그자가 입을 벌리면 안 좋은 일이 생기나. 그만큼 그자는 입을 벌리고 수많은 것들을 뱉어내지 않았던가. 시집 제목이 된 시를 보자.


어떤 고백


  고백컨대 나는 그를 저버릴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뼈마디 앙상한 손으로 내 심장을 숙주 삼아 동맥과 정맥의 뒤바뀐 운명을 노래하는 그를 저주해본 적이 있다 듬성듬성 이 빠진 폐허를 과부 가랑이마냥 벌리고 헤벌쭉 웃는 그를 오, 심장 따위를 헐값에 넘겨버린 적이 있다


  그자가 입을 벌리면 안개도 아니고 권태도 아닌 것들이 쥐 썩는 냄새처럼 속절없이 부풀어올라 내 망루 끝을 새나갔다 그때면 세계의 바깥이 암담하여 미래의 애인마저 저주스러웠다 오, 그자가 입을 벌리면 케르베로스가 지키는 문 저편에서 죽은 자들이 죽지 못해 구더기처럼 기어올라왔다


  썩은 내장을 거슬러 위장을 지나 식도를 타고 사력을 다해 터져 나오는 독거미 독거미들, 기어코 존재의 망루 밖에 게워지는 천 년 전의 어떤 고백, 만 년 전의 어떤 비명이 오, 그자가 입을 벌리면!


김지혜, 오, 그자가 입을 벌리면, 열림원. 2006년. 41쪽.


해석은 포기다. 이해도 포기다. 그런데 마음에 남아 있다. 마음 속에 담아두기로 한다. 언젠가 이 시가 마음에서 머리로 올라올 때가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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