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미래 -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 변화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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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이 간결하고 명확하다. 군더더기 없는 주장이다. 공간이 사람들 삶에 영향을 주니, 공간에 대해서 고민하고, 적절한 공간을 만들어내야 미래 사회에서 특히 감염병이 창궐하는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다양한 분야의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표적인 주거공간인 아파트부터 시작해서, 종교 시설, 학교, 직장, 도시, 도로, 그린벨트 개발, 상업 시설, 청년들의 주거 문제, 국토 균형 발전 등에서 필요한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중에 아파트를 살펴보면 유현준은 포스트 코로나 아파트의 5원칙을 주장한다. 첫째, 1가구 1발코니, 둘째, 소셜 믹스 공원, 셋째, 기둥식 구조, 넷째, 복합 구성, 다섯째, 친환경적인 목구조 사용이다.


거실이나 방을 확장해서 발코니를 없앤 아파트가 많은데, 그런 구조가 사람들을 더욱 삭막하게 한다고 한다. 그러니 발코니를 통해서 자연을 주거 공간 안으로 들여와 안과 밖이 자연스레 연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단 주장이다. 이것이 되면 자연스레 소셜 믹스 공원은 해결될 수 있고, 기둥식 구조나 다양한 분야의 시설들이 들어오게 되는 복합 구성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목구조로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고 하는데... 


이 주장대로 하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은 이런 책을 읽으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는 우화가 떠오르곤 한다. 당연한 주장이고, 좋은 주장인데, 그런데 어떻게 실행하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의견도 실행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쥐들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다는 좋은 의견을 냈지만, 어떻게 달 것인가에서 실행 단계로 가지 못했으니 그야말로 탁상공론에 불과하게 되었지 않나.


유현준의 주장도 이렇게 될 확률이 높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주장을 과연 어느 부처에서 검토할까? 국회에서 관련 법을 개정하려 할까? 주무 부서라고 할 수 있는 국토행정부나 중소기업벤처부나 뭐 이런 부처의 관료들이 이 책을 읽고 고민을 할까?


아님, 이러한 전문가들이 모여 자신들의 의견을 정치권에 전달할까? 그것도 아니다.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말을 할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실행이 될까?


유현준의 주장이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제안-> (   )->실행'으로 가는데 그 빈 칸이 하나가 아니라 너무도 많은 (괄호들)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괄호 안에 무엇이 들어가야 할지도 명확해야 하는데, 유현준의 책에서는 이 괄호에 들어갈 단계들이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문득 이 괄호를 주장하는 사람이 채울 수 있다면 우리 사회 공간 구조가 지금처럼 되어 있지 않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괄호를 채우게 할 사람들은 바로 그 공간에서 살아갈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유현준이 주장한 내용을 자신들의 공간에 적용하려는 노력은 그 공간에 살 사람들이 해야 한다. 그래야 하는데, 이것도 그렇게 할 여유가 있어야 한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내가 살 만해야 그 다음, 우리가 살 만한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에 눈을 돌리게 된다.


이 책 곳곳에서 유현준은 사람은 이기적인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 사람들은 천사가 아니다. 우선 내 배가 불러야 한다. 내 배가 부르면 남 배 고픈 줄 모른다고 하는 속담이 있지만, 아니다. 내 배가 불러야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다. 생각도, 행동도 내가 우선 살 만해야 한다.


이 점에서 유현준은 청년 주택 정책이 임대 위주로 가지 않고, 청년들이 집을 소유할 수 있는 정책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고 한다. 괄호 안을 채울 수 있는 하나의 단계를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정책을 펼치게 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괄호가 필요하지만, 우선 방향에 대해서 공유를 하면 비어 있는 괄호들을 채우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이렇게 이 책을 통해 하는 유현준의 주장은 귀기울 만하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실천한 건축들에 대해서도 예를 들어 보여주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점도 알 수 있다. 다만, 건축에 적용되는 수많은 법규들을 현실에 맞게, 또 미래에 맞게 개정하는데는 국회가 나서야 하는데, 그게 만만치 않다는 점이 문제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읽을 만하다. 우리가 살아갈 미래의 공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들이 모여 다양한 의견을 제시한다면, 중간에 비어 있는 괄호들을 하나씩 하나씩 채워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유현준의 주장이 정리되어 있다. 그의 말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의 계층 간 이동 사다리를 만들려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오프라인 세상에서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은 사람 간의 '만남의 밀도'가 높아지면서도 동시에 전염병에 강한 도시 공간이다. ... 선형의 공원, 자율 주행 로봇 전용 지하 물류 터널, 발코니가 있는 아파트, 규모는 작아지고 다양성은 많은 학교, 다양한 부도심, 특색 있는 지방 도시가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 사회이 문제는 비전 없는 부동산 정책들과 세금 정책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공간, 새로운 도시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358쪽)


이 제안과 실행 사이에 있는 많은 괄호들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가 남아 있지만, 우선 이 주장들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있으면 좋겠다. 그런 과정 속에서 괄호들이 하나하나 없어지게 되겠지. 


덧글


목구조 건물에 대한 이야기. 아파트 이야기를 하면서 앞부분에서 유현준은 목구조가 우리나라 아파트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라고 이야기했다. 나무들을 접합해서 건축을 하기 때문에 나무들도 강도 높은 건축 자재가 된다고... 그래서 노르웨이에서는 2019년 세계에서 가장 높은 85미터 높이의 19층짜리 목조 건축물 '미에스트로네'가 완성됐다(50-51쪽)고 한다.


그런데 347쪽에 보면 전통 건축을 이야기하면서 목재 구조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전통 건축물이라고 한정할 수도 있지만, '더 높은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는 새로운 재료가 필요했다. 철이나 콘크리트는 목재나 돌보다 단위 면적당 압축력을 받아 내는 힘이 크다. 근대 건축에 접어들어 철근 콘크리트 기둥이 나오고 나서야 수십 층 높이의 건축물을 만들 수 있게 됐다'고 하는데, 앞에서 아파트 논의에서 목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니, 현대에는 목재를 더 강하게 만들 수 있으니, 목재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였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자칫 잘못 읽으면 목구조 건축을 미래 건축에서 제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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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9-14 0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대화할 때 아주 유용한 책 같아요 ㅎㅎㅎ
전 후 반부에 유교수님이 출마하시나 생각했어요 ㅎㅎ

kinye91 2021-09-14 08:02   좋아요 1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요즘 같은 선거철에 각종 공약이 난무하는데, 이 책에 나온 제안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그것의 타당성, 실현가능성에 대해 논의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