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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고양이들 ㅣ 봄나무 문학선
어슐러 K. 르귄 지음, S.D. 쉰들러 그림, 김정아 옮김 / 봄나무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남들과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으면 둘 중 하나의 대우를 받게 된다. 칭송이나 박해. 칭송이나 박해 모두 다름을 인식하고 대응하는 방식이다. 칭송이 좋을 듯하지만, 가끔은 다른 존재에게 어떤 특별함을 요구할 수 있다. 다른 만큼 더 잘해야 한다고 기대하고, 기대에 못 미치면 실망을 하기도 한다. 그러니 다른 존재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동화에서 막내 제인은 엄마를 찾아가는 길에 우연히 어느 아저씨 집에 들어간다. 이 아저씨는 날개 달린 제인을 보고 배척하지 않지만 그 특이함을 이용한다. 제인에게는 '귀여운 애가야'라고 하면서, 언론에 알려 신문과 방송에 제인이 나오게 한다. 그리고 제인이 쇼를 하게 한다. 제인이 자기를 떠나지 못하도록 창문을 닫아놓고. 이게 과연 칭송일까?
칭송도 이럴진대 박해는 어떨까? 그것은 생명을 위협한다. 엄마 고양이인 제인은 날개 달린 고양이들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잡혀서 동물원에 가거나 서커스를 하는 등, 고양이들이 원하지 않게 갇혀 지낼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자기 아이들이 안전한 곳으로 떠나가게 한다.
우리가 보통 다른 존재를 대할 때 지니는 태도인데, 사실 다른 존재를 대할 때 그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을 가장 먼저 해야 한다. 그런 자세를 어린이들은 지니고 있다. 다름을 인식하지 않고 그대로 지낼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이 동화에서 그 역할을 행크와 수잔이 해주고 있다. 이 어린이들은 날개 달린 고양이 네 마리를 보고서도 놀라지 않는다. 그럼에도 날개 달린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하면 (심지어 자신의 부모들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고양이들이 구경거리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들은 남들의 눈에 띠지 않는 곳에 고양이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고양이들과 함께 한다. '함께'라는 말이 중요하다. 가두지도, 억지로 어떤 행동을 하게 하지도 않는다. 그냥 함께 어울린다.
이렇게 아이들만큼 고양이들을 그 자체로 인정해주는 사람이 한 명 더 나온다. 바로 엄마 제인과 함께 살고 있는 할머니. 이 할머니는 창문을 걸어 잠근 아저씨와는 달리 창문을 활짝 열어둔다. 제인이 그것을 더 원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는 듯이.
이 활짝 열린 창문으로 농장에 있는 네 마리 날개 달린 고양이와 도시에 살고 있는 제인이 만날 수 있게 된다. 이들은 다른 공간에 있지만 왔다 갔다 하면서 만나고 있다. 이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여기에 날개가 없는 고양이, 약간은 허황스러운 알렉산더라는 고양이가 등장한다. 자신이 잘난 줄 아는 고양이. 세상에서 모험을 하고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이루고자 하지만 트럭에 놀라고, 사냥개에게 쫓기고, 나무 위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던 알렉산더.
제인이 구해줘 함께 지내게 되는데, 알렉산더 역시 날개 달린 고양이를 칭송하거나 배척하지 않는다. 그냥 함께 지낸다. 그렇게 다름을 대하는 방식. 그 존재를 인정해 주는 일. 그래서 그는 처음에 말을 못 하던 제인이 말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알렉산더에게 그것이 의미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날개 달린 고양이를 집에서 함께 지내는 고양이가 아닌 야생에서 지내는 고양이로 바꾸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날개 달린 고양이들이 다름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듯이 들고양이들도 우리에게 그런 대우를 받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야 한다.
환상적인 동화지만 다름을 인식하고 함께 지낼 때 서로가 행복해 질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