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시인 예이츠의 '비잔티움으로의 항해'에서 따온 구절이라고 한다. 제목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데... 노인들이 살기 힘든 나라를 연상하겠지만, 소설을 읽어보면 왜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이 소설을 시작하기 전에 예이츠 시가 인용되어 있는데, 인용된 첫구절에 '저것은 늙은 사람들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세대 차이를 다룬 소설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그래서 노인들이 소외되고 무시되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데, 소설 첫부분부터 그런 생각을 깨버리고 만다.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많은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소설은 그런 참혹한 광경을 어떤 감정을 담지 않고 표현하고 있다. 피가 사방으로 터지는 모습, 사람을 죽이면서도 감정의 동요가 하나도 나타나지 않는 시거라는 인물.
스릴러다. 쫓고 쫓기는 자. 살인자와 그를 잡기 위한 보안관. 그렇게 소설은 거의 끝부분까지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보안관인 벨의 이야기로 끝맺는다. 벨이 보안관직을 그만두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난다. 젊은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벨의 말에는 소설 제목이 어울린다.
무례를 용납하게 될 때 모든 게 시작됩니다. 더 이상 존칭과 경어를 듣지 못하는 순간 눈앞에 종말이 보이는 거지요.(334쪽)
그런데 이 말은 왜 보안관이 있는 지역에 범죄 사건이 더 많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벨의 대답이다. 과연 이 말이 이 소설이 전개와 어울릴까?
이 말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 소설은 어떤 과정을 거쳤어야 할까? 시거라는 희대의 살인마가 이렇게 어른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말일까? 이 말로는 시거라는 인물의 살인을 이야기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시거는 그런 사회적 규범과는 애초부터 거리가 있는 인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시거가 왜 살인마가 되었는지 이야기하지 않는다. 또한 시거가 죽이는 대상이 노인들만도 아니다. 시거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죽인다. 그것도 어떤 땐 동전 던지기를 해서 운에 맡기기도 한다. 여기에 노인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제목과 연관짓고 싶어하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데... 소설은 세 인물을 축으로 전개된다. 우연히 살인현장을 발견하고 돈을 가져간 모스, 모스에게서 돈을 찾으려는 시거, 그리고 그 지역의 보안관인 벨.
모스와 시거는 노인이라고 할 수 없다. 30대 정도 되는 인물로 나온다. 이들이 사회 주축세력이라면 이들을 통해서 노인들이 존중받지 않는 사회임을 찾아내야 한다. 우선 모스는 돈을 발견하고 가져간다. 돈, 이제는 돈이 우선되는 사회다. 모스가 피해다닐 때도 돈으로 대부분을 해결한다. 그렇다면 돈이 사랑을 대신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모스는 자기 부인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부인의 엄마와 함께 하지 못하고, 또 돈을 가졌을 때 부인과도 떨어져 행동하게 된다.
벨이 지닌 가치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문제다. 벨은 자신의 아내와 떨어져 지낼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노인인 벨에게는 가정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지닌 대상이 굳건하게 존재하고 있다. 다만, 이런 가치가 다음 세대들에게 전해지지 않고 무시당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시거는? 그는 오로지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만 행동한다. 다른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다. 공동체라는 개념은 시거에게는 없다. 노인들에게는 개인보다는 공동체가 중요했고, 벨이 그러한 공동체 의식을 배반했다는 자책감 때문에 괴로워하는 장면이 뒤에 나오지만, 시거에게는 애초부터 그런 개념이 없다. 그러니 그에게는 노인이건 젊은이이건 상관이 없다. 자신의 눈에 거슬리면 무조건 제거할 뿐이다.
즉 가정과 공동체의 가치가 파괴된 사회에서 노인이 된 벨이 물러나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나고 있다. 이렇게 한 세대의 가치가 후대 세대로 전승되지 못하고 단절되었을 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을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은 살인 사건을 끝맺지 않는다. 악이 징계를 당하는 권선징악이 노인들 세대의 가치관이라면 이제 새로운 세상은 권선징악이 더이상 통하지 않는 사회다. 강자가 살아남는 시대. 그런 시대의 모습을 살인 사건이 해결되지 않는 결말로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등장인물들의 역할이 초반에 명확하게 설정되어 있음에도 소설은 중후반까지 긴박하게 전개된다. 모스와 시거, 그리고 벨로 나뉘어 소설이 전개되어 빠르게, 흥미진진하게 읽어갈 수 있다. 이것이 매카시 소설의 장점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