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가족 - 가족의 눈으로 본 한국전쟁
권헌익 지음, 정소영 옮김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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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가족을 파괴한다. 더 설명이 필요없는, 전쟁하면 떠올릴 수 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전쟁은 목숨을 앗아가는데, 가족 구성원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은 가족을 파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족 구성원이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라, 의도하지 않는 재난으로 목숨을 잃었을 때 가족들은 충격에 빠진다. 전쟁을 통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지니는 상실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가족을 잃었음에도 그 슬픔을 표현하지 못하게 강제된다면? 전쟁이 더욱 비극적인 이유는 어떤 사람이나 가족, 친족에게는 전쟁으로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행위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 이방인이 되거나 박해받는 위치에 서게 된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가 특히 더 그랬다. 전쟁을 겪고 나서 극심한 이념대립. 그 이념대립으로 인한 가족의 해체, 친족의 해체.. 그리고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책임지게 하는 정치권력.

 

하여 긴긴 세월동안 가슴에만 묻어두었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슬픔들이 민주화가 되면서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이제는 당당하게 추모할 수 있게 된 경우도 있지만, 아직도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전쟁 희생자들이 있다.

 

그런 희생자들의 가족, 친족에게는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끝나지 않았다. 물리력만으로 전쟁을 설명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는 책의 끝부분에서 우리나라 전쟁 희생자들이 걸어왔던 길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코리아에서의 학살 이후 친족의 정치적 삶은 산 자가 죽은 자를 친근한 존재로 기억할 양도할 수 없는 권리, 뒤르켐이 영혼의 권리(the right of soul)라고 정의했던 그 권리를 다시 찾기 위한 길고 지난한 싸움이었다. 영혼의 권리란 죽은 이에게는 친족의 세계에 존재할 수 있는 권리의 회복이고, 살아 있는 이에게는 정치적 사회 내의 시민권의 회복과 동일한 의미이다.' (265쪽)

 

이런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제주 4.3사건을 예로 든다. 이제는 대통령도 추념식에서 공식적인 사과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친족들도 쉬쉬 하면서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과 탄압이 있었는지.

 

가족이 해체되고, 친족이 붕괴되고, 마을 공동체가 파괴되어 버린 전쟁으로 인한 후유증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여기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공동체가 어떻게 회복되어 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오렌 세월동안 수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지금은 그래도 많이 치유가 된 상태. 전쟁으로 인해 상대를 적으로 만들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 친족들, 마을 공동체원들 사이에서도 적이 되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죽고 죽임을 당했던 그런 역사 속에서 갈등이 지속되지 않도록, 이제는 화해와 치유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 온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영혼의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해 온 과정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3과 6.25로 인해 많은 가족, 친족, 마을 공동체가 파괴되었고, 그 중에는 아직도 회복되지 못한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조금씩 그 갈등으로부터 치유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물론 남북 관계가 잘 풀려야 이런 과정이 더욱 잘 진행될텐데... 아직까지는 그렇지 못한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전쟁에 참여한 당사자만이 아니라 그 후대 세대들이 겪어야 했던 일들, 가족 구성원으로 인해 가족들, 친족들이 겪어야 했던 일들... 근대는 개인주의가 확립된 사회라고 하지만, 전쟁은 그것이 허구임을 만천하에 보여주었고... 

 

전쟁은 연대책임임을 뼛속 깊이 인식하도록 했음을, 전쟁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이 겪은 일을 통해서도 잘 알고 있다. 결국 전쟁은 가족, 친족을 배제할 수 없는, 개인 또는 국가의 문제만이 아니라 가족, 친족, 마을공동체의 문제가 됨을 이 책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치유와 화해가 정립되어갈 때다. 그래야 한다. 근대를 넘어서려 하는 이때 적어도 가족 구성원, 친족 구성원, 또는 마을 공동체 사람이 한 일로 인해 다른 구성원들이 어려움을 겪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리고 용서를 바탕으로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적어도 '영혼의 권리'는 지켜줘야 하지 않겠는가. '영혼의 권리'를 지켜줘야 산 자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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