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178호를 읽으면서 가슴이 뻥 뚫리기보다는 더 답답해짐을 느꼈으니, 웬일인가?


  "녹색평론"에서 하는 주장들이 계속 허공에만 맴돌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


  아니면 "녹색평론"에서 하는 이야기들이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해서인가? 실현가능성? 다른 말로 하면 "대안"이라고 한다.


  지금 사회를 비판하면 "그래서 대안이 뭔데?" 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대안도 없으면서 비판하지 말라고 한다. 이렇게 현실을 비판하기조차도 힘들어지고 있단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지고 말았다.


"녹색평론"에서 계속하고 있는 주장들을 몇 가지로 정리해보면, 소농이 중심이 되는 농업, 모두에게 돌아가는 기본소득, 그리고 생태와 환경을 중시하는 민주주의. 더 많이 들 수도 있지만 이 정도만 들어도 된다.


이 중에 하나도 이루지지 않았기 때문에... 농업이 중요하다고 그렇게 이야기하는데도, 소농이 중심이 되는 농업정책은 요원하고, 오히려 기계농을 비롯한 대량생산 체제로 농업도 개편하려고 하고 있으니... 농촌이 공동화되고 있는 지가 오래되었음에도, 여전히 성장 성장 하면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농업을 키우려 하지 않는다.


농민들이 또는 농촌에 사람들이 모여 살게 하려면 기본 생활이 보장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을 농민기본소득 또는 농촌기본소득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음에도, 아직도 멀었다. (송원규, 농 기본소득이 열어줄 미래)


꼭 농촌기본소득만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기본소득 논의가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으니, 이번 호에서 다루고 있는 여러 논의들을 참조할 만하다. (이유진, 어떤 탄소중립사회를 만들 것인가, 안효상, 기본소득의 오디세이아, 남기업,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 생태적 전환의 길 등등)


어려운 경제학 지식을 동원해서 논의할 필요도 있지만, 성서에 기반해서 탈성장을 이야기하는 글도 매우 소중하다. (조현철, 탈성장과 상상력, 성서에 길을 묻다)


출애급기를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출애급을 기존 세상과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모습으로 해석하고,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말은, 기존 현실에서 믿고 있었던 잘못된 관념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으로, 그리고 광야에서 40년을 헤매는 이유는, 과거와 단절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음을 생각해야 한다는 글.


여기에 또 안식일이라는 개념... 그렇다. 일만 죽어라 해서는 안 된다고, 쉴 때 쉬어야 한다고, 성장만을 추구하지 말고 적당한 노동을 해야 함을 그렇게 찾아내고 있으니... 엄청나게 많은 수의 기독교 신자가 있는 우리나라, 과연 그들은 성서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여전히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을 자랑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유명무실해서 많은 사람들이 노동현장에서 죽어나가는 현실. 이런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성장논리를 극복해야 함을 생각하게 한다.


이렇게 "녹색평론" 178호는 기후위기에 대응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어 "녹색평론"이 지속적으로 제기한 이 문제들이 또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기는 하지만, 그래도 문제제기를 꾸준히 하고 있는 잡지가 있다는 생각에 위안을 삼기도 한다.


이번 호에 실린 박남준의 글(안테나 켰습니다)과 이병철의 시(그 죽임의 삽질을 내려놓아라)는 아직도 우리가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마음으로도 느끼게 해주고 있다.


"대안이 뭐냐?"는 질문에 "지금 이대로 가다가는 공멸하고 만다는 사실은 확실하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지만, 공멸을 막기 위해서는 이렇게 꾸준히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이 있다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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