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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ㅣ 서부해안 연대기 3부작 3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3권까기 오는 동안 서술자는 지위가 점점 떨어진다. 그렇다. 기프트에서 오렉은 지배층에 속하는데, 보이스에서 메메르는 식민지 지식인이다. 그런데 3권인 '파워'에서는 자유민에서 노예로 떨어진 가비르가 서술자로 나온다.
노예. 그들에겐 자유가 없다. 스스로 행동할 권리도 없다. 오로지 그들은 주인에 의해 행동이 결정된다. 그렇지만, 그런 노예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자각하는 길이 없을까? 있다. 바로 교육이다. 읽기다.
읽기는 그래서 작가가 쓴 내용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수동적인 활동이 아니다. 읽기는 자신의 생각을 정립해 가고, 행동을 예비하는 능동적인 활동이다. 읽기는 위험하다. 특히 노예에게는.
노예가 읽기를 통해 자신을 깨닫게 되면 더이상 노예로 머물 수 없다. 물론 노예를 벗어나는 방법이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가비르가 주인에게서 벗어나 숲 속에 들어갔을 때 폭력으로 노예들을 해방시키려는 집단이 있었다.
그러나 폭력만으로는 해방이 되지 않는다. 노예 해방의 지도자 역시 폭력으로 공동체를 유지하려 하고, 그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교육을 하려는 노력을 힘껏 펼치지 않기 때문에, 이 숲 속 공동체는 지배층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된다.
진정한 자유는 어떻게 얻어지는가? 가비르는 자신의 가족을 찾아 여행을 떠나지만 읽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읽기를 통해서 그는 자신의 삶을 다시 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미래의 일을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가비르. 그는 그 미래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른다. 그것을 배우고자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자유를 잃고 교사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 복종하려고 한다. 그런 복종으로 자유가 얻어질 수 있을까?
배움의 과정에서도 일방적인 복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가비르의 교육과정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우여곡절 끝에 가비르는 오렉에게 이른다.
3권 끝부분에 가면 오렉, 그라이, 메메르, 가비르, 그리고 가비르가 데리고 온 멜이 함께 만나다. 이들은 당분간 함께 지낼 것이다.
읽기라는, 문학이라는 공통점으로 인해 그들은 자신이 놓여 있는 상황에서 능동적으로 활동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간 것이다.
아무리 주인이 잘해줘도, 그것은 주인의 관점을, 이익을 대변한 행동이라는 것. 내 자유는, 내 권리는 남에게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 그것을 깨닫는데, 누나의 죽음까지 겪는 가비르.
그럼에도 가비르가 포기하지 않게 되는 이유는 그가 읽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읽기를 통해 그는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읽기의 힘이다. 읽기 중에서도 문학의 힘이다.
문학, 그것은 바로 우리들에게 삶을 살펴보고, 주인으로서 살아가게 하는 동기를 제공한다. 오렉과 메메르, 가비르. 세 권의 서술자를 통해 르귄은 이렇게 읽기의 중요성, 문학의 중요성을 우리게에 알려준다.
환상적인, 실제 존재하지 않는 서부해안이라는 국가, 공동체를 통해, 다른 존재들, 그리고 식민지, 주인과 노예 등을 설정해서 그런 환경에서 자유를 찾아가는, 삶의 주인이 되어가는 주인공들을 우리게에 보여주고 있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게. 그리고 너무도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읽을 수 있게, 그렇게 서부해안 연대기에서 20세기, 아니 21세기 우리 사회의 모습, 우리들의 모습까지도 볼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