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의 이 시집 제목을 보다 요즘 언론에서 들리는 막말이 떠올랐다.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이 아니라, 빌어먹을 쓸모없는 말들, 아니 해로운 말들, 해서는 안될 말들.


  빌어먹을, 빌어먹을, 제길, 제길. 그렇게 문장이 아니라 단어들이 나를 습격한다. 쓰레기, 중증 치매환자. 세상 안 좋은 말들이 방송을 타고 돌아다니고 있다.


  그것도 시민들을 대표한다는, 또는 대표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하는 말이 겨우 이 정도다.


  말들이 고생이 많다. 그 사람들 입에서 나와 다른 사람 귀에 들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고, 그들 마음에 상처를 주는지. 


허수경 시인은 '문장의 방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직 아무도 방문해보지 않은 문장의 방문을 문득 / 받는 시인은 얼마나 외로운가' (허수경, '문장의 방문' 중 1-2행)


새로운 문장의 방문을 받은 시인은 그 문장을 써야 한다. 문장, 단어들의 방문은 시인을 통해 우리들에게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문장이나 단어는 낯설다. 쉽게 인정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시인은 그 문장을, 그 단어를 써야만 한다. 얼마나 외로울 것인가?


반대로 정치인들은 남들이 쓰지 않아야 할 말들을 쓴다. 그들이 쓰는 문장은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그런 말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천연덕스럽게 쓴다. 외로움이란 걸 천성적으로 모르는 족속들이다.


말들이 지닌 힘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들이 지닌 힘을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쓴다. 그러니 그들은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다. 문장이나 단어는 오로지 수단일 뿐이지.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수단. 무기. 그렇다. 그들의 말에는 외로움이 아니라 피가 묻어 있다. 오로지 살벌함과 역겨움만을 담고 있다.


시인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 그들은 문장의 방문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단어, 문장들을 일부러 방문해 데려 온다. 그리고 그들을 맘껏 사용한다. 그러니, 다시 허수경 시인의 시이자 시집 제목이 된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이름 없는 섬들에 살던 많은 짐승들이 죽어가는 세월이에요


이름 없는 것들이지요?


말을 못 알아들으니 죽여도 좋다고 말하던

어느 백인 장교의 명령 같지 않나요

이름 없는 세월을 나는 이렇게 정의해요


아님, 말 못하는 것들이라 영혼이 없다고 말하던

근대 입구의 세월 속에

당신, 아직도 울고 있나요?


오늘도 콜레라가 창궐하는 도읍을 지나

신시(新市)를 짓는 장군들을 보았어요

나는 그 장군들이 이 지상에 올 때 신시의 해안에 살던

도룡뇽 새끼가 저문 눈을 껌벅거리며

달의 운석처럼 낯선 시간처럼

날 바라보는 것을 보았어요


그때면 나는 당신이 바라보던 달걀 프라이였어요

내가 태어나 당신이 죽고

죽은 당신의 단백질과 기름으로

말하는 짐승인 내가 자라는 거지요


이거 긴 세기의 이야기지요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의 이야기지요 


허수경,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문학과지성사. 2005년. 126-127쪽


막말은 이렇게 다른 존재를 말살한다. 다른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니, 그를 동등한 존재로 받아들이지 않으니, 무조건 배척할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긴 세기를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말뿐이 아니라 이제는 행동으로, 그렇게. 하지만 차가운 심장은 멈출 수밖에 없다. 지속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뜨거운 심장이 필요하다. 시인이 '시인의 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심장은 뛰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가장 뜨거운 성기가 된다. 그곳에서 가장 아픈 아이들이 태어난다. 그런데 그 심장이 차가워질 때 아이들은 어디로 가서 태어날 별을 찾을까'라고.


아이들만이 아니라 차가운 심장은 이미 태어난 사람도 죽게 만든다. 그들을 어루만져줄 문장은, 단어는 오지 않고 오로지 비수가 될 문장, 말들만 온다. 그러니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자, 이제 다시 심장을 뜨겁게 하자.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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