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뉴스나 다른 방송을 보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나온다. 그 중에 한 말이 '영끌'이란 말이다. 도대체 '영끌'이 뭐야? 했는데, 세상에 집을 영혼까지 끌어다 사는 것이란다.
자신이 가진 재산으로는 (사실 재산이라고 할 것도 없다. 젊은이들이 취업이 안 되는데, 어떻게 돈을 모으겠는가? 또 직장을 가진 30-40대라고 해도 허리가 휠 정도로 높은 아이들 교육비를 감당하느라, 집을 살 만한 재산을 모으기는 힘들다. 아니다. 재산을 모을 수는 있다. 그런데 직장인이 월급을 모아 모아놓는 재산은 산술급수적으로 늘 수밖에 없는데, 집값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 집을 사기란 세월이 흐르면 흐를 수록 더 힘들어진다. - 맬더스의 인구론을 빗댄다면. 그러니 영혼을 끌어다라도 집을 살 수밖에)집을 장만하기가 힘들다.
간단한 산수만 해도 그것은 명확하다. 300만 원 월급을 받는다 치자. (너무도 후하게 월급을 잡았다. 까짓 세금을 비롯한 공과금 모두 빼고, 순수입이라고 하자) 여기에 생활비가 얼마나 들지 계산하지 말자. 100만원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하자. 그리고 200만원을 저축한다고 하면, 10년을 저축하면 2억 4천만원이 모인다. 이자도 후하게 주자. 3억원?
어? 서울에 3억원짜리 집이 있던가? 전세는? 있다 치자. 이왕 쓰는 거 팍팍 쓰자. 그래도 10년을 꼬박 모아야 집 하나 장만할 수 있다. 월 200만원씩 저축해서.
한데 월 200만원씩 저축할 수 있는 직장인이 있을까? 그들이 쓰는 생활비 중에 집세로 내는 돈이 만만치 않을테고... 식비며, 교통비며, 기타 다른 생활비용을 합치면 순수입 300만원이라고 해도 200만원을 저축하기는 힘들다. 100만원을 저축한다고 하면 2배가 되니, 20년이다. 빨리 직장을 잡아 25세에 취업을 했다고 해도 45세가 되어야 집을 마련할 수 있다. 정말 영혼마저 끌어다 쓰고 싶을 지경이다.
한데, 집값이 3억이라고? 그것도 서울 집값이? 지나가던 개가 웃을 소리다. 전세도 그보다는 많다. 그러니 서울에 집을 마련하려고 하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기본 재산이 없는 사람은.. 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사람은.
지방에 가서 살면 되지 않겠냐고? 처음부터 지방에서 살았으면 몰라도, 서울에 살던 사람이, 또 직장이, 아니면 먹고 살 거리를 찾을 데가 서울이나 서울 근교라면 그것도 힘든 일이다. 그러니 서울에서 또는 서울 근교에서 집을 마련해야 한다. 등골이 빠지고, 허리가 휘더라도, 생존을 위해서 서울 근처를 떠날 수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
'영끌'이란 말. 그래서 그 무게가 너무도 무겁다. 삶의 무게라고 치부하기엔 더더욱 무겁다.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고통을 주는 말이다. 그런데, '영끌'해도 안 된다고 한다. 서울에서 집 장만하는 일이.
하여 호텔을 개조해서 젊은세대들이 살아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더니, 이것을 어떻게 하면 젊은이들이 생활방식에 맞는 주거 공간으로 만들 것인지 고민하지 않고, 보완할 생각은 하지 않고, '호텔 거지'라는 표현을 쓰는 작자들이 있다.
가만히나 있으면 중간은 갈 텐데, 이들은 말을 통해서 자신들의 무지를, 자신들의 오만을, 자신들의 기득권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다. 없는 사람들을 더더욱 절망으로 이끌게 하는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낸다.
참, 무섭다. '영끌'이란 말에서 무서움을 못 느끼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뱉은 말에서 어찌 무서움을 느낄 수 있겠는가. 이래저래 답답한 세상이다. 함순례 시집을 읽다가 갑자기 '영끌'이 생각났다. 이런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
너무도 먼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 아니, 우리들이 다시 느껴야 할 기쁨 아닌가 하는 생각.
첫눈
서울 모퉁이에
집 한 채 들였습니다
웃풍 심한 살림에도 찡그림 없던
시누이
저리 펄펄 납니다
십사 년 재채기 다 쏟아내어
사뿐,
사뿐,
함순례, 혹시나, 삶창. 2013년. 62쪽.
첫눈을 맞이한 것 같은 기쁨, 집을 장만했을 때의 기쁨. 그건 특정한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기쁨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누려야 할 기쁨이다.
의식주든, 식의주든, 순서와 상관없이 내가 깃들어 살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우리 삶이 유지되기 때문에.. 그런 집을 마련하는 기쁨을 모두가 누릴 수 있어야 하는데, 마치 첫눈을 맞듯이.
하여 '영끌'이란 말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그 전에 '호텔 거지'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가 혐오표현임을 인식하고 부끄러워 했으면 좋겠다.
누구나 첫집을 가졌을 때의 기쁨, 이렇게 첫눈을 맞이하는 즐거움과 같이 누릴 수 있는 그런 사회였으면 좋겠다. 날이 추워지고, 첫눈이라고 할 수 있게 펄펄, 그러나 사뿐, 사뿐, 눈이 왔으면 좋겠다. 우리들 마음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