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5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박우수 옮김 / 민음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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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가 젊었을 때 쓴 책이라고 한다. 한창 사랑에 빠진 사람이 사랑을 잃고, 그 사랑에 대해서 쓴 글. 참 격정적이다. 사랑에 빠지면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의 늪에 빠져 도무지 빠져나오질 못한다고 하는데, 단테 역시 마찬가지다.

 

겨우 9살에 베아트리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베아트리체는 24살의 나이로 죽는다. 그런 베아트리체의 모든 것이 단테의 온몸에 스며든다. 단테의 모든 것이 베아트리체에게 향해 있다. 그의 눈은 언제 어디서고 베아트리체를 찾아낸다. 그런 그가 베아트리체와 제대로 이야기 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정신적 사랑이라고 하는 흔히 플라토닉 러브라고 하는 것과도 거리가 먼데, 그럼에도 단테의 사랑에는 육체가 빠져 있으니, 뭐라 말하기 힘들다. 다만, 베아트리체에 대한 단테의 사랑은 자신의 영혼을 담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베아트리체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면서 겪게 되는 감정을 시로 표현하고, 그 시를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시를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지, 나뉜 부분은 어떤 구절부터 시작하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는 책이다.

 

사랑에 빠진 젊은이의 사랑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작품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 쓴 시를 해설하는 쪽이라고 보는 편이 좋겠다. 사랑에 빠지면 시인이 된다고 하지만, 이미 단테는 뛰어난 시인이었다.

 

뛰어난 시인이 자신의 사랑을 시로 쓰고, 그에 대한 해설도 했으니, 젊은 시절의 작품이라 나중에 단테가 부끄러워했다고 하지만,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이렇게 사랑을 시로 표현하는 일, 얼마나 좋은 일인가.

 

아마도 단테가 쓴 신곡을 읽기 전에 이 작품을 읽는 것이 더 좋겠다. 왜 신곡에서 베르길리우스와 베아트리체가 단테를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는지를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 책은 단테가 쓴 '새로운 인생'을 읽는 것에도 의미가 있지만, 보카치오(우리가 알고 있는 [데카메론]을 쓴 사람)가 쓴 '단테의 생애'를 읽을 수 있다는 데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단테란 사람에 대해서 좀더 알아갈 수 있는 글이다.

 

여기서 단테가 라틴어로 작품을 쓰지 않고 당시에는 속어라고 하는 피렌체어로 작품을 쓴 이유를 나름대로 이야기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한글로 작품들이 창작되는데 꽤 시간이 걸렸듯이 유럽에서도 라틴어로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자신들의 언어로 작품활동을 하기를 망설였다고 하는데, 단테는 피렌체어로 당당하게 작품을 쓴 것이다. 그래서 단테가 더 위대해졌는지도 모르지만.

 

어째서 [희극]과 같이 대작이자 그렇게 고상한 주제를 다루는 작품을 이전의 다른 시인들처럼 라틴어로 쓰지 않고 피렌체 방언으로 썼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나는 두 가지 주된 이유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첫째로 동료 시민들과 다른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두루 소용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 둘째로 ...실제로는 라틴어로 작품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를 곧 중단했는데, 아직 젖을 빨고 있는 사람들의 입속에 빵껍질을 넣어주는 것은 헛된 짓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현대적인 감각에 맞는 문체로 작품을 다시 시작했고, 속어로 이를 계속 써나갔다. (181쪽)

 

([신곡]의 원래 제목은 '희극'이었는데, 1555년 베네치아에서 원래의 제목 앞에 '신성한'이란 형용사가 붙은 훌륭한 판본이 나오면서 '산성한 희극', 즉 '신곡'이라는 제목으로 굳어지게 되었다(150쪽 주)고 한다)

 

이 말이 꼭 맞다는 것은 아니지만, 첫번째 이유는 공감이 된다. 두번째 이유는 단테의 위대함보다는, 단테가 시대를 읽는 눈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이유가 될 것이고.

 

이렇듯 보카치오는 단테와 가까운 시기에 살았던 사람답게 단테에 대해서 자세하게 잘 알려주고 있다. 그래서 이 글은 단테를 알아가는 데 상당한 의미가 있다.

 

여기에 로세티라는 화가의 생애가 덧붙어 있는데, 그것은 단테가 쓴 '새로운 인생'을 로세티가 번역했기 때문이다. 그가 영어로 번역한 작품에, 또 단테를 소재로 그린 그림이 있기에 이 책에는 로세티의 생애까지 실려 있다.

 

하여 단테가 쓴 젊은 시절의 작품, 베아트리체에 대한 단테의 사랑을 잘 알 수 있는 '새로운 인생'을 읽는 재미에 보카치오가 쓴 '단테의 생애'까지 읽을 수 있기에 [신곡]을 읽으려는 사람들, 이 책을 먼저 읽는 것이 좋겠다.

 

덧붙이는 말

 

보카치오의 글 중에서 왜 시인들의 대관식에 ..월계수 잎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한 글이 있어서... 흔히, 아폴론과 다프네의 이야기에서 월계관의 유래를 이야기하는데, 보카치오도 그것을 부인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작가답게 다음의 이유가 더 마음에 든다고 하는데...

 

월계수는 주목할 만하고 현저한 세 가지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첫째는 ... 잎이 지지 않는 상록수라는 점이다. 둘째는 이 나무가 결코 벼락을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 셋째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매우 향기롭다는 점이다.

월계관을 씌우는 영광을 만들어낸 옛 사람들은 이들 세 가지 속성이 시인들과 승리한 황제들의 덕행과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첫재로 사철 푸른 잎은 이미 월계관을 쓴 사람들이나 앞으로 쓰게 될 사람들의 업적이 항상 살아남으리라는 점에서 그들의 업적이 가져다준 명성을 예증한다고 여져겼다. 둘째로는 이들의 업적이 너무나 막강해서 질투의 불이나 모든 것을 재로 만들어버리는 영속하는 '시간의 번개'도, 하늘의 번개가 이 나무를 때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업적을 날려버릴 수 없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의 업적은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이를 듣거나 읽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덜 주거나 고마운 마음을 덜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항상 흡족하고 향기를 발할 것이라고 옛 사람들은 말했다.

따라서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들 월계관이 우리가 아는 한 거기에 걸맞은 업적을 가진 사람들에게 부합하는 것이다. (167-168쪽)

 

이 유래에 대한 설명이 나 역시 마음에 든다. 그래야 계관시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지. 음악, 태양의 신인 아폴론을 들먹이는 것보다 얼마나 좋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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