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 시인 20주기 추모시집이란다. 지금은 20주기하고도 또 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우연히도 김남주 시인의 20주기에 우리는 시인이 그리도 겪고 싶어하지 않았던 사건을 겪고 말았다.

 

  세상이 나아진 것 하나 없다는 소리를 해야 했던 그 시절. 그리고 촛불. 정권 교체... 나아지나? 나아지겠지. 나아져야지. 의문형에서 기대하는 말로, 기대하는 말에서 당위의 말로.

 

  당위.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는 말. 이 말은 지금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시인의 육체는 묻혔지만, 그의 시는 살아서 우리 곁에 남았는데...

 

  2014년 사건이 우리 곁에 남으려면,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는 책임을 지고, 앞으로는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적 제도를 마련해야 하는데...

 

물 속으로 잠겨들어가는 배를 보며,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속수무책이었던 우리들이, 2020년 코로나19라는 질병 앞에서 또다시 속수무책이다. 그냥 개인이 책임을 져야 할 뿐이다. 국가는 없다. 사회는 없다. 오로지 개인이 마스크 꼭 쓰고, 거리 두기 하고, 가능하면 집에 있어야 한단다.

 

출퇴근 시간 전철, 버스 한 번 안 타본 사람들처럼 이야기한다.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 마스크 빼고는 어떤 방역지침도 통할 수 없는 것이 대중교통일텐데... 빨리 들어가라고 저녁 시간 때 배차를 줄인단다. 먹고 살기 위해서, 정말로 살기 위해서 저녁까지, 밤 늦게까지 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생각을 해보았나 싶다.

 

그냥 일찍 들어가라고 하면 다들 고맙다고, 가족과 함께 저녁을 보낼 수 있어서 좋다고 할 줄 알았나? 들어가려 해도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 움직이지 않으려 해도 움직여야만 살 수 있는 사람들에게, 움직이지마. 가만히 있으라고. 어째 많이 들어본 말인데...

 

그때 그 말과 지금 그 말은 분명 다른 말인데... 들리는 말은 그 말뿐이니...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좋은 세상 쪽으로 나아왔던가? 이 생각을 한다. 김남주 추모시집을 읽으며, 시인이 꿈꾸었던 자유가 얼마나 실현되었는지, 시인이 꿈꾸었던 사랑이 넘치는 사회가, 힘들어도 사과 반쪽씩도 나눌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지금 우리 사회인지.

 

김남주 시인을 그리워하게 된다. 다양한 방식으로 김남주 시인을 추모했는데, 그 중에 '만인의 물봉'이라는 시를 인용한다.

 

  만인의 물봉

                       - 김인호

 

순박한 청년의 미소 카랑카랑한 육성

만인의 물봉 당신은

망월동 묘역에 그저 잠들어 있지 않고

중외공원 청송녹죽 시비 속에 갇혀 있지 않고

 

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 속에도 있고

고추를 따는 노인의 굽은 그림자 속에도

신사동 맥코이 호프집 팝콘 그릇 속에도

수박등 흐려진 선창가 유행가 가락 속에도 있고

 

넘기는 네루다 싯귀 속에도 있고

지리산 빗점골 너럭바우 위에도

광화문 광장 유민이 아빠 곁에도

밀양 송전탑 위에도 있고

 

언제 어디나 생명이 꿈틀거리는 곳이면

빛나는 별로 어둠을 가르며 달려가는 당신은

만인의 물봉

(물봉: 김남주 시인의 애칭)

 

김남주기념사업회 엮음, 자유의 나무 한 그루, 문학들, 2014년. 35-36쪽.

 

그래, 김남주 시인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그가 꿈꾸던 세상이 이루어질 때까지. 아니 이루어진 다음에도 그는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그가 심은 '자유의 나무 한 그루'의 그늘에서 우리가 쉴 수 있도록.

 

2020년이 저물어 가는 지금, 김남주 시인을 그리며,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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