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박한 세상, 어쩌면 각자도생의 세상인지도 모르겠다. 서로가 서로를 돕고, 나보다 못한 사람,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세상이 아니라, 오로지 내 이익을 위해 살아가는 세상일지도 모른다.

 

  그런 세상이 과연 행복할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세상으로 우리는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유란 이름으로. 시장이란 이름으로.

 

  그렇게 양지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여기지만, 세상살이는 꼭 그렇게 생각한 대로 살아지지 않는다.

 

  이럴 때 낮은 곳을, 어두운 곳을 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의 밀알이 떨어져 싹을 틔우고, 결실을 맺듯이 세상을 조금 더 밝고 좋게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

 

그들이 바로 좋은 세상의 종자가 된다. 굽어보고, 뒤돌아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그리워지는 세상이다. 이정록의 시를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런 사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런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다짐... 참 어렵지만 적어도 굽어보고, 뒤돌아보는 자세를 지니려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해 지는 쪽으로

 

햇살동냥 하지 말라고

밭둑을 따라 한줄만 심었지.

그런데도 해 지는 쪽으로

고갤 수그리는 해바라기가 있다네.

 

나는 꼭,

그 녀석을 종자로 삼는다네.

 

벗 그림자로

마음의 골짜기를 문지르는 까만 눈동자,

속눈썹이 젖어 있네.

 

머리통 여물 때면 어김없이

 

또다시 고개 돌려 발끝 내려다보는 놈이 생겨나지.

그늘 막대가 가리키는 쪽을

나도 매일 바라본다네

 

해마다 나는

석양으로 눈길 다진 그 녀석을

종자로 삼는다네.

 

돌아보는 놈이 되자고

굽어보는 종자가 되자고.

 

이정록,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창비. 2016년.10-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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