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살 때, 사실 시집에서 몇 편의 시를 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느 한 시라도 마음에 꽂히면 좋고, 그런 시가 없더라고 어느 한 구절이라도 마음에 꽂히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언어는 언어끼리 모여 형태를 이루고, 그 형태가 온전하게 내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언어 자체만으로도 다가올 때가 있다. 시란 그런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시를 읽는 데 정답이 있을 리가 없고, 시집을 사는 데도 정답이 있을 수가 없다. 그냥 자신의 마음이 끌리는 대로 사면 되고, 읽으면 된다. 비록 머리 속에 남아 았지 않더라도 읽는 순간, 자신의 마음이 변하게 되었을 테니까.
이 시집은 제목을 보고 샀다. 제목이 얼마나 마음에 드는지...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 착한 사람이 잘사는 사회였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텐데... 어쩌면 옛말에 욕을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는 말이 어울리는 시대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이 제목은 더욱 마음에 와닿는다.
왜 욕을 먹으면 오래 살까?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다. 욕을 먹는 사람은 자신만을 생각하지 남을 생각하지 않는다. 남의 감정을 헤아리는 섬세한 감성을 지니지 못했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의 편의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사는 것이다.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이들은 오래 살 수밖에 없다. 오로지 자신만을, 특히 남이 욕을 하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으니 말이다.
이런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순간 순간마다 마음 쓰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마음을 쓴다는 것, 자신의 마음을 다른 존재에게 내어준다는 것이다. 우리 마음이 화수분이면 좋겠는데, 이게 어느 순간 고갈되고 만다. 고갈되었을 때, 더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그러니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는 이 시집의 제목이 마음에 와닿을 수밖에. 아직 착한 사람이 되지 못했기에. 그렇지만 착한 사람이고 싶기에.
어떤 시에서 이 구절이 나왔을까 시집을 첫시부터 주욱 읽어가다. 이번 목표는 이 구절이 나온 시를 찾는 것이다. 읽다읽다 드디어 찾았다. '보리밭 놀이방'이라는 시다.
보리밭 놀이방
보리밭에는 종달새가 살고, 종달새의 영혼은 나에게 날아왔다. 내가 갖고 놀다가 깨트려버린 알에서는 노란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영혼은 그 흐느낌처럼 남아서 나를 둘러싼다. 점막의 세월 속에 바람이 분다. 가끔은 내 장난감이 되어준 돌멩이와 달팽이와 지렁이 들이 아직 꿈틀댄다. 나는 변하지 않았나. 착한 벌레에서 착한 사람으로
거인들이 밭에 씨를 뿌릴 때, 나는 보리밭에서 자랐다. 해 질 녘 거인들은 기도를 하고 어린 나를 들어 올려 집으로 데려갔다. 거인과 헤어지게 된 건 보리가 자라서 익고 베어낸 후의 쓸쓸한 들판을 본 후였다. 텅 빈 속을 드러낸 채 굴러다니던 새의 알, 달팽이의 집, 말라비트러진 지렁이들. 그들의 영혼을 채워 목이 붓도록 펑펑 울 수 있게 하려면 어찌해야 할까.
그때 내 손에서 예쁘게 잠자고 있던 종달새의 알, 긴 촉수를 뻗어 나를 핥던 달팽이의 혀, 기어간 자리마다 흘려놓은 지렁이의 눈물. 나는 사라져버린 파문을 움켜쥐고 생각에 빠졌다. 내 머리에 그렁그렁 울 것 같은 구름모자를 누가 씌워주었다.
나는 아직 변하지 않았나.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 힘없는 사람이 되는 건 더 두렵다. 어린 시절처럼 보리밭에 쭈그리고 앉아 생각한다. 보리밭에서 쭈그리고 앉아 놀던 시절. 뜻밖에도 내 눈동자에서 부화한 새가 날아가기도 한다. 아직 깨지지 않았나. 구름과 새. 아직 헤어지지 않았나.
박서영,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다. 걷는사람. 2019년. 70-71쪽.
어쩌면 나이 들어가면서 잃은 것. 그것은 조화로운 삶일지도 모른다.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세상. 물론 이 세상에서도 약육강식은 존재한다. 한 생명은 다른 생명으로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내 생명이 다른 생명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다른 생명들을 타자로 취급하기 시작한다. 그들에 대한 경외심이 사라지기 시작하면 파괴가 일어난다. 이제는 옛것들과 이별한다. 옛것들과 이별하지 못하면 자신의 마음에 구멍이 난다.
여기서 착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힘없는 사람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것은 무서움과 두려움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착한 사람, 힘없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기에, 이들이 있기에 아직은 세상은 살 만하다.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무섭'지만, 그렇다고 악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이 시에 나와 있는 말 중에 '뜻밖에도'란 말처럼, 그렇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세상은 아직도 더 많은 착한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아직 다른 생명들과 헤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시인이 '뜻밖에도'라고 한 말에서 가능성을 본다. 착한 사람이 되는 건 무섭지만, 그렇다고 착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것이다.
이러니 누가 뭐래 해도 아직 이 세상에서 '뜻밖에도' 우리는 이런 착한 사람을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