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 그날 그 자리에 있을 사람에게
심보선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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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 자리에 있을 사람에게'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는 시인이자 사회학자인 심보선의 산문집이다. 산문집이라는 말이 낯설다면 수필집이라고 하면 되겠다. 자기 생각이나 경험, 느낌을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쓴 글이라는 수필.

 

자연스럽고 솔직하기 때문에 어떤 수필은 개인사가 많이 나와 그 사람의 사적인 생활을 많이 알게 해주기도 하지만, 또 어떤 수필은 철학적인 단상을 많이 담고 있어서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수필은 사회 문제를 주로 다뤄서 우리에게 현실의 모습을 생각하게 해주기도 한다.

 

심보선의 이 책은 철학적인 단상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생활에서 느낀 점과 예술가(시인 또는 비평가)로서 느낀 점, 우리 사회에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한 생각 등이 담겨 있다.

 

총 3부로 묶여 있는데, 1부에서 주로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적인 생각이 표현된 글들이 나온다. 그래서 심보선이라는 개인이 어떤 일을 했으며, 그 경험을 통해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2부에서는 예술과 관련된 글들을 모았다.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2부가 친근하게 다가올 것이다. 또한 2부에는 심보선에게 영향을 준, 또는 그의 생각을 촉발하는 다른 작품들이 많이 언급되고 있어서, 책이 또다른 책을 부르는 역할을 한다.

 

다른 책을 읽게 하지 못하는 글은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책을 통해서 다른 책들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책은 다른 책을 이끌고 내게 다가온다. 나는 그런 책을 좋은 책이라고 하는데, 심보선의 이 책에서 2부가 그런 역할을 한다.

 

물론 1부가 의미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 얻은 생각들을 표현한 그 글들을 우리가 밖에서 읽음으로써 또다른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개인적 경험을 하는 글쓴이를 바라보는 또다른 개인적 경험. 이것이 1부의 매력이라면, 2부는 다른 예술가를 통해 얻는 글쓴이를 바라보면서 글쓴이의 글과 또 그가 언급한 책들을 통해서 얻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 2부라고 할 수 있다.

 

3부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다룬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문제들에 글쓴이가 참여하면서 느낀 점들... 지금도 진행 중인 일들이 많아서 글쓴이를 통해서 그 문제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우리가 만났던 문제들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 문제를 가운데 놓고 글쓴이의 생각과 내 생각이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3부다.

 

이런 점들이 수필이 지닌 매력이기도 할 것이고.

 

글쓴이가 '그날 그 자리에 있을 사람에게'라는 말은 우리가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같은 장소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간은 같지만 시간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으로 인해 변화가 있을 것이고, 그런 변화를 인식하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작은 제목이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날 그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라고 질문하는 것. 지금 내가 있는 풍경도 환하니, 그런 환한 풍경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겨 있는 질문이라면 이 책에 실린 1부에 실린 글들은 어느 정도 이 질문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반대로 그날 그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라고 질문하는 것이 지금 내가 있는 풍경은 어두운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쪽의 풍경이 환한 쪽으로 바뀌었는가라는 질문일 수 있다. 사회가 좋은 쪽으로 변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3부가 아마도 이 질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2부는 두 질문을 어느 정도 모두 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예술이다. 환함과 어두움을 함께 품고 있는 것. 얼핏 모순되어 보일지라도 그것이 바로 현실임을 보여주는 것. 그러니 이 책은 서로 다른 시기에 쓰인 글들을 나름 분류해서 모아놓은 책이지만, 2부가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환한 풍경과 지금까지 어두운 풍경, 두 풍경이 모두 속해 있는 예술. 그래,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라는 질문은 지금 그쪽의 풍경이 환하다면 환함 속에 있는 어둠을 살필 수 있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는 마음과, 그쪽의 풍경이 어두움이라면 그 어둠 속에서도 환함이 있음을 찾을 수 있는 삶이었으면 한다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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