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다른 사람들과 구분하려고 한다. 구분한다는 것, 나는 다르다는 것. 그들과 나 사이에 벽을 쌓고, 그들을 내 테두리에서 밀어내는 것.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데, 함께 살아가면서 다른 점을 찾기보다는 비슷한 점을 더 많이 찾을 수 있을 텐데...

 

  다른 사람의 안 좋은 모습보다는 좋은 모습을 찾는 눈을 지녀야 하는데,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주제에 다른 사람 눈에 있는 티끌은 왜 이리도 잘 보이는지...

 

  그 티끌을 침소봉대해서 마치 큰 허물을 지닌 양, 그 사람과 상종하면 안 되는 양 여기며 지냈던 것은 아닌지...

 

그렇게 자꾸만 남을 밀어내는 마음이,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들까지 밀어내게 된 것은 아닌지... 이 지구상에 있다는 것 자체가 존재이유가 될 텐데...

 

정철훈 시를 읽으며, 이 시에 나오는 숱한 밀어내기를 만나면서, 그렇게 밀려나간 삶을 시에서 만나면서 나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밀어내는 만큼 남들 역시 나를 밀어낼 텐데...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다가는 서로 꽉 막힌, 소통할 수 없는 존재로 살아가게만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철훈 시집 [살고 싶은 아침]에는 세상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렇게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숱하게 밀려난 사람들, 아마도 시인의 가족사와도 연결이 되겠지만, 그런 밀려난 삶들에서도 닮은 점을 찾으려 한 시인에게서 삶의 자세를 배우게 된다.

 

그 중에 '옷걸이가 닮았네'란 시를 읽으며 그간 내가 너무 다른 존재들을 밀어내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했다.

 

 옷걸이가 닮았네

 

여럿이 함께 걸려 있네

바지도 저고리도 같이 걸려

같이 나부끼고 같이 흔들리고

태양도 달도 같이 거기서 운행하네

옷걸이에서 지난 긴긴 밤들이 닮았네

체위가 닮고 몸이 닮고 청바지와

양말과 발바닥과 발가락이 닮았네

양말 구멍까지 닮았네

여럿이 함께 잠을 자네

발가락과 양말과 그들의 역할이 함께 있네

그들의 기능이 모두 함께 있네

끊어진 것과 이어진 것이 함께 있네

옷걸이의 세상은 무덤이라도 좋아서

무덤이 닮고 옷걸이가 닮고 티셔츠가 닮고

우리의 불그죽죽한 영혼과 거죽과 입술과

그 무엇이라도 옷걸이에서 닮았네

문순태와 김준태와 작고한 조태일이 태로 닮았네

하나의 태로, 하나의 형태로 옷걸이에 걸려 있네

광주도 모스끄바도 평양도 서울도

정말 거짓말처럼 닮았네

광주의 옷걸이가 충장로의 옷걸이와

서울의 옷걸이가 남산의 옷걸이와 닮았네

얼마나 쾌청한 지평이었으면

옷걸이가 닮을까 세상이 휘뜩휘뜩

소멸할 듯 사라질 듯 서로 닮았네

얼마나 즐거운 지평이었으면

석양이 일출과 함께 지평에 걸리고

청바지와 가을과 고양이와 하늘이

연속극과 요절복통과 흔들리는 눈동자와

수많은 요동과 사랑과 이별이 모두

하나의 옷걸이에서 나부끼네

해탈과 해찰이 지들끼리 방실방실 함께 있네

아무런 감춤이 없고 아무런 숨김이 없네

무엇이라도 무엇이 되네

여럿이 함께 옷걸이에 걸려 있네

 

정철훈, 살고 싶은 아침. 창작과비평사. 2000년. 16-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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