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박사 1 - 한 친구가 이야기하는 독일 작곡가 아드리안 레버퀸의 생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4
토마스 만 지음, 임홍배.박병덕 옮김 / 민음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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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악마와 거래를 한 사람. 악마의 도움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지만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줄 수밖에 없는 사람. 결국 악마와 하는 거래란 자신의 영혼을 잃는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영혼을 잃더라도 불멸의 작품을 얻을 수 있다면? 이 때는 판단을 쉽게 할 수 없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지만 무한을 꿈꾸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비록 자신의 육체가 영원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의 이름만은, 또는 자신의 무엇인가만은 영원하길 바란다.

 

그럴 때 영혼마저도 팔 수 있단 생각을 한다. 물론 보통사람들은 절대로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않는 것이 아니고 못한다. 영혼을 팔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이미 비범한 사람이다. 이 사람들은 악마와 거래를 하기 전에도 이미 다른 사람보다는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주인공 아드리안 역시 남들과 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다.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 능력은 인간의 영역에서 존재한다. 이것은 인간을 초월할 수가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이 한계는 절망을 부르고, 절망은 결국 악마를 불러내게 된다. 인간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악마를 불러내고, 악마와 계약을 하는 것이다.

 

세속적인 인간다운 삶을 죽이는 대신 영원한 그 무엇을 얻어내기 위해서. '파우스트'란 이름을 보면 그런 존재를 떠올리게 된다. 서양에서 '파우스트'가 악마와 계약을 한 존재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파우스트'하면 괴테가 쓴 '파우스트'를 떠올린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더불어.

 

이 소설은 괴테 소설과는 다르게 한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작은 제목이 '한 친구가 이야기하는 독일 작곡가 아드리안 레버퀸의 생애'다. 아드리안 레버퀸이라는 사람이 뛰어난 음악을 남기고 죽었는데, 그 과정을 전기문이라는 형식으로 어린시절부터 함께 지냈던 친구가 쓴다는 형식으로 써내려간 소설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줄곧 친구인 '나'가 이끌어가는데, 아드리안의 천재성과 그런 그가 어떻게 성장해 가는지를 친구의 시선으로 서술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1권 마지막 부분에 즉 이 소설에서 구분한 장으로 치면 '25'에서 아드리안의 목소리가 직접 나온다.

 

그가 쓴 글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아드리안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 드디어 설명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니 1권은 그냥 전기적인 형식을 띤 소설로,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파우스트와 관련이 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는데, 드디어 25에 가면 아, 이래서 파우스트와 관련이 되는구나 하게 된다.

 

괴테는 메피스토펠레스를 불러냈다면, 토마스 만은 사마엘을 불러낸다. 사마엘은 '죽음의 독을 선사하는 천사'라는 뜻이야. (442-443쪽)라고 하니, 결국 인간에게 인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을 주지만, 그를 인간의 세계에 머물게 하지 않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주인공인 아드리안에게 제시하는 조건은 그래서 사랑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내가 내세운 조건은 명확하고 공정했어. 지옥의 당연한 질투에 의해 정해진 조건이지. 사랑이라는 게 따뜻한 인간미를 지닌 것인 이상 자넨 사랑을 해선 안 돼. 자네의 삶은 냉정해야 하니까. 그래서 자넨 누구도 사랑해선 안 돼. (483쪽)

 

메피스토펠레스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상태라고 말하는 순간 그 영혼을 가지겠다고 했는데, 사마엘은 사랑을 하면 안 된다고 한다. 그렇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인간의 세계에 머무른다는 것이니... 결국 괴테의 파우스트를 구원하는 것은 사랑인데... 그러니 후대에 나온 작품에서 사랑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제한 조건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사랑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경멸하는 병에 걸려야 한다. 아드리안이 에스메랄다라는 사람을 찾아가 잠을 자고 매독에 걸리는 일. 그 일부터 악마와 계약이 성립하기 시작한다. 왜 그런 병일까? 사마엘은 말한다.

 

사람들에게 내보이기를 꺼려 하는 추잡하고 은밀한 병이야말로 세상과 평범한 삶에 비판적으로 맞설 수 있게 해 주고, 시민적 질서에 아이러니의 정신으로 반항하게 하며, 자유로운 정신과 책과 사색에서 피난처를 찾게 하지. (451쪽)

 

예술가는 범범자와 광인의 형제야. 범범자와 미치광이의 생태를 이해하지 못하고서 일찍이 그럴싸한 예술 작품이 나온 적이 있다고 생각하나? (459쪽)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힘을 증대시켜 주는 비(非)진리는 불모성의 어떤 도덕적 진리보다 낫다는 거야. 천재성을 발휘하게 하는 창조적인 병, 모든 장애를 당당히 뛰어넘어 대담한 도취 상태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이 병이야말로 좀스럽게 꼼지락거리는 건강보다 백 배 천 배 더 멋진 인생을 보장한다 이 말이야. 병적인 것에서는 병적인 것밖에 나올 수 없다는 말은 정말 멍청한 소리지.  ... 생의 활력이라는 원칙을 기준으로 보면 병과 건강의 구별은 무의미해. 건강을 앞세우는 족속들은 병든 덕분에 독창성을 얻은 병적인 천재의 작품 앞에서 맥을 못 추지. 그런 무리들은 오히려 병적인 천재의 작품에 감탄하고, 찬양하고, 높이 받들고, 받아들이고 변화시켜서 문화유산으로 전승하지. (471쪽)

 

이제 2권에서 아드리안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작품을 창작할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 근대 소설가인 김동인이 '광염소나타'라는 작품에서 비정상적인 상태에서만 명곡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주인공처럼. 하지만 그 순간은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악마와 한 계약은 끝이 있다.

 

자네는 우리에게서 시간을 얻었어. 독창적인 시간, 고귀한 시간을. 우리는 이십사 년이라는 시간을 자네한테 전적으로 제공한 거야. 자네가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간인 셈이지. 이 시간이 만료되면, 물론 그게 언제가 될지는 예측할 수 없고, 따라서 시간은 곧 영원이라 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자네를 데려가겠네. (481쪽)

 

이런 계약으로 인해 이 소설의 서술자는 60세가 된 때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드리안의 이야기를 글로 쓴다. 그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어떻게 다음 내용이 펼쳐지는지는 2권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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