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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와 현대 ㅣ 발터 벤야민 선집 7
발터 벤야민 지음, 최성만 옮김 / 길(도서출판) / 2020년 6월
평점 :
벤야민 자신도 쉽지 않은 사람인데, 그 사람이 카프카에 대해서 글을 썼다니...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인데, 이렇게 연결이 되다니.. 그것도 벤야민이 카프카에 대해서 이토록 열광을 했다니.
현대를 연구하는 학자,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에 대해서 이야기한 학자, 그런 학자인 벤야민이 카프카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것은 카프카가 현대를 대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점에서 카프카가 현대를 대변한다고 생각했을까?
카프카 작품을 현대 사회를 표현한 작품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오히려 기괴한 작품으로 파악하고 제쳐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벤야민이 카프카에서 본 것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삶이 아니었을까?
무엇이든 결론을 내지 못하고 과정 중에 있는, 그 과정에서 미래를 실현하려고 하지만 결코 미래를 현재에 실현할 수 없는 현대를 카프카의 작품에서 찾았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현대라는 괴물에 한없이 작아지기만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는 어떤 논리도 통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려고 발버둥치지만 제자리에서 맴돌던지, 어떤 알지 못할 힘에 휩쓸려 사라져버리든지, 아니면 끊임없이 나아가고는 있지만 제한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런 현대인들. 그러니 현대인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벌레로 변하거나 하지 않았던가.
벤야민이 브레히트와 대화한 것을 기록한 내용에서는 아킬레스와 거북이 이야기가 나온다. 절대로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는 아킬레스. 하지만 카프카 소설에서 브레히트는 말 타기의 행위로 이야기를 대체한다고 한다.
말 타기의 행위가 아주 작은 부분들로 - 우발적 사건들은 차치하고라도 -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면 어느 누구도 이웃 마을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러한 말 타기를 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하지만 여기서 잘못은 '어느 누구도'에 있다. 말 타기가 세분화되듯이 말 탄 사람도 세분화 되기 때문이다. 인생의 통일성이 사라지듯이 인생의 짧음 또한 사라진다. 인생이 짧으면 짧은 대로 두어도 된다. 그래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길을 떠난 사람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이 마을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303-304쪽)
이 말을 카프카 소설에 대입하자면 소설을 너무 부분으로 나누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소설을 이해할 수 없다. 소설 속 장면 속에 갇혀 나올 수가 없게 된다. 수많은 담장 안에 갇혀 아무리 밖으로 나가려 해도 나갈 수 없는 카프카 소설 속 사람처럼 되어 버린다.
이때는 과감하게 부분들을 포기해야 한다. 건너뛸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카프카는 이렇게 단편 속에 갇힌, 부분 속에 갇힌, 전체가 아닌 부분들로 나뉜 사람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미래를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대는 이렇게 사람들을 부분으로 나누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체를 파악할 수 없는 사람들. 따라서 카프카는 이런 현대인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비극을 작품에서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분에 갇힌 현대인들. 그런 모습을 표현하기에는 그동안의 소설로는 부족했다고 여겼을지도.
그러므로 벤야민에게 '도식적으로 말해 카프카의 작품은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 사이의 매우 보기 드문 연결고리를 보여주는 작품들 중 하나이다'(310쪽)라는 평가를 받는지도 모른다.
굳이 벤야민이 해석한 카프카를 따라갈 필요는 없다. 다만 카프카를 이렇게 보기도 한다는 것을 알면 된다. 학자나 평론가가 주장한 내용을 따라가는 것은 아킬레스와 거북이 경주와 같다. 부분들로만 나누어, 부분들로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절대로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작품을 그렇게 부분으로만 쪼개서 볼 수는 없다. 카프카를 역시 여러 부분으로만 보아서도 안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카프카 작품을 읽는 것이다. 읽고 자신이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 생각들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보태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벤야민이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다. 카프카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그는 혼자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나 다른 비평가와도 토론을 한다. 많은 서신을 교환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다듬는다. 우리는 그래서 카프카를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자료를 더 첨가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