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의 인간 - 유럽 이민노동자들의 경험에 대한 기록 존 버거 & 장 모르 도서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차미례 옮김 / 눈빛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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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거의 50년 전에 나온 이 책이 (1973-1974년에 쓰여졌다고 하니)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에. 이렇게 세상이 변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에.

 

여기에 이 책은 출발-일-귀향이라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민 노동자들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민 노동자들이 귀향을 하더라도 그곳에서 계속 살기는 힘들어진다는 사실. 결국 그는 다시 이민 노동자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지금에도 반복되고 있음에.

 

유럽을 배경으로, 당시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유고슬리비아, 스페인, 포르투갈 사람들이, 또 다른 나라 사람들이 독일이나 스위스, 프랑스로 와 노동자로 지내게 되는 이야기를 사진과 글로 담은 존 버거의 책(사진-장 모르)이다. 그의 책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충격을 준 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그렇다.

 

자본주의의 세계화에서 이는 일시적인 일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몇몇 구절들을 통해서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살펴보자.

 

'그들은 자기들의 노동을 제공하러 온다. 그들의 노동력은 기성품이다. 이제부터 그 노동력의 덕분에 생산에 이익을 얻게 될 공업화된 국가들은 그 노동력을 생성시키는 비용은 전혀 부담을 해본 적이 없다. 그뿐 아니라 중병에 걸린 이민 노동자나 너무 늙어서 일할 수 없게 된 이민 노동자를 부양하는 경비 역시 부담하지 않는다. 도시화된 국가의 경제에 관한한 이민 노동자들은 불사(不死)의 존재, 끊임없이 대체 가능하므로 죽음이란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태어나지도 않으며, 양육되지도 않으며, 나이 먹지도 않으며, 지치지도 않으며, 죽지도 않는다. 그들은 단 하나의 기능 - 일하는 것 - 을 가질 뿐이다. 그들의 삶의 다른 모든 기능들은 그들의 출신 국가의 책임이다.' (64쪽)

 

섬뜩하고도 슬픈 이 구절에서 말하는 일들이 과연 먼 과거의 일인가? 지금 우리나라 이주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일이기도 하지 않는가. 그들은 개인이 아니라 이주노동자, 노동력이라는 틀에 맞춰진 존재 아닌가. 그들에 대해서 어떤 책임을 지는가. 그냥 추방해 버리면 그뿐이지 않은가. 지금도 그런데... 살기 위해서 온 그들에게 해준 것은 단지 그들 노동에 대한 임금을 지불하는 것뿐. 나머지는 아예 모르쇠를 하는 것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이민 노동자(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태도다. 이게 신자유주의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다.

 

이런 이민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부당하게 대우받는 것도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때문에 이들은 자신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할 수가 없다. 조직화된 저항은 곧 추방으로 이어지기에 그들은 대부분 이주해 간 나라에 순응한다. 자신들의 상태가 결코 '비정상'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런데 어느 순간 자신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비정상'임을 깨닫게 된다.

 

'정상적인' 것이 완전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유일한 경우는 그 반대가 되는 행동, 즉 '비정상적'이며 '극단적'이거나 혁명적인 행동을 통해서이다. 그 정상적인 것이 이렇게 해서 그 정상성이 박탈되어 버리고 나면, 자신이 예외적인 존재라는 인간 고유의 느낌은 그 자신의 세계를 넘어서 그가 소속되어 살고 있는 역사적인 순간 전체로 확장되어 나간다.

 

그때에야 '나'는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뿐 아니라, 내가 어떤 일을 당하고 있는가까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나'는 그 '정상적인' 것들이 나 자신의 얼마만큼을 부정하거나 속박하고 있는가를 발견하게 된다. (104쪽)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이것이 바로 세계화된 자본이 추구하는 것이다.

 

'각국 정부나 다국적 기업들은 지구 전체를 염두에 두고 그들의 정책을 짜고 있으며, 일시적인 이민 노동자로부터 얻어내는 자본주의의 이득은 상당한 것이다.' (111쪽)

 

이런 자본의 간계를 파악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상상력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자신이 있는 곳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다. 그런 상상력을 통해 인간은 주어진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데... 이런 상상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것, 그것은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 것이 자본의 속성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틈을 발견해 내고 자신의 문제를 찾아내게 된다.

 

'사람의 시각의 지평이 얼마나 제한된 것이든간에, 그의 상상력은 경계선을 모르는 법이다. 자기 마을 밖으로 한번도 나가 본 적이 없는 한 남자라도… 저 멀리 별나라까지 닿을 수 있는 상상의 세계 전부를 창조해낼 수가 있는 것이다. 여행을 하지 않고도 사람은 세계의 다른 쪽 끝을 꿰뚫어볼 수가 있다.' (135쪽)

 

그럼에도 자기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일자리를 옮기려고 해도 어렵다. 특히 이민 노동자들에게는. 자신의 생각으로 잘못된 것을 깨달았다 해도 행동으로 옮기기가 또 요청을 하더라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그만큼 그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가장 어려운 것은 바로 삶의 지속성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이때 이들은 '비정상'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노조를 결성하기도 하고, 파업을 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행동들은 개인적으로는 실패로 돌아가게 되지만 이민 노동자 전체로 보면 '정상'적인 것이라 여겼던 것들이 '비정상'이었음을 알려주는 계기로 작동한다. 이들에게는 이렇게 미래가 있는 것이다.

 

'미래를 향해서 어떤 헌납을 한다는 것은 지속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반드시 자신의 개인적인 이득의 지속성만이 아니라(그 헌납이란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는 일이 포함될 수도 있다), 자기가 믿고 있는 가치의 지속성을 말한다. 그 희생은 미래에 인정을 받고 용납되리라는 확신 속에서 지금 제공되는 것이다. 그 희생이란, 사실은 미래에까지 그 지속성이 확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어떤 전통을 향해서 이루어진다. 그 전통의 내용은 신의 뜻에 대한 종교적인 믿음, 가족의 재산에 대한 희망, 국가의 운명, 혁명의 필요성 등 여러가지로 변한다. 그러나 그 모두가 지속감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모두가 그 속에서 재확인을 구하고 있다.' (187쪽)

 

이민 노동자에게는 이주해 간 나라에서는 이런 지속감을 느끼기가 힘들다. 그렇지만 이주 노동자들은 지속감을 자신에게서가 아니라 가족에게서 찾는다. 가족들의 현재 행복을 위해서 그들은 일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자신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일하는 것은 미래라기보다는 현재의 가족들이 잘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지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더해서 자신과 가족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미래에 대한 기대, 그것이 지속되리라는 믿음을 지니려는 마음도 있기에 그렇게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는 과거에 외국으로 노동자들을 보냈지만, 이제는 외국에서 노동자들이 들어온다. 그들이 이 책에 나온 것과 비슷한 일을 겪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이 책은 지금 우리 사회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오레 전에 나온 책이지만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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