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선가 이 시를 본 순간, 시집을 사서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렇게 강렬하게 마음을 붙잡는 시를 오랜만에 만났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집을 산다는 것이 시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가격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책값이 다른 물가에 비하면 그리 비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두고두고 읽을 수도 있어서 일회성 소비에 그치지 않는다고 하지만, 현재 내 소비의 순위에서 책은 좀 뒤로 밀리지 않았나 싶은데, 특히 시집은 주로 중고서점을 통해서 구입을 하고 있기에 망설이고 망설이고...

 

  그럼에도 '동태'란 이 시가 워낙 강렬하게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으니, 에라 모르겠다 시집을 사자, 이와 비슷한 시를 또 만날 수도 있지 않겠냐 하고 새 시집을 구입.

 

이래야 시인도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을텐데, 시집을 통해서 독자들과 만나고, 시집만으로도 시인이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마음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는 나조차도 우선 순위에서 시집을 뒤로 돌리고 있으니... 반성하면서 시집을 읽다.

 

시집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마음에 와닿는 시들이 제법 있다. '동태'만큼 강렬하지는 않지만, 시집에 두번째로 실려 있는 '등'이라는 시도 좋다. 등, 자신은 자기 등을 보지 못하지만 남들은 본다. 그런데 내가 보지 못하는 등이 남에게는 든든한 버티목일 수 있다는 사실. 그렇게 자신의 등을 내어주는 사람들로 인해 좀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는 것.

 

조금 더 넘기면 '숲'이란 시... 신영복 선생의 글에서 보았던 나무가 외쳤다는 말, 우리 모여 숲을 이루자고. 그렇게 모여 숲을 이루는 사람들. 함께 사는 사람들.

 

그러다가 '개미'란 시를 보면 섬뜩해진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 어쩌면 지금 이 상태인지도 모른다.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주식시장이 개미에게 열리면서부터 / 자본과 노동을 한 몸에 갖게 된 개미들은 / 자기가 자본가인지 노동자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박상화, 개미 1연. 70-71쪽)

 

이렇게 헷갈린 사람들이 나중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이런 모습이다.

 

'노동자는 착취를 당한다는 말도 뺏겼고 / 노동의 꿈도 뺏기고 / 노동자라는 말도 뺏겼다. / 뺏긴다는 말도 뺏기고 나면 / 진짜 개미처럼 일만 하다 죽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박상화, 개미 6연?. 70-71쪽)

 

돈이라는 것만을 추구하다가 마지막으로 도달해야 할 모습에 대한 경고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가 노동자임을 망각한 결과, 뺏긴다는 말조차 빼앗겨 버리게 되는 일. 이렇게 되면 안 되겠지.

 

'동태'라는 시와 상반되게 같은 명태인데, 황태는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단단하게 자신을 무장하지 못하면 이렇게 된다. 제목도 '황태'가 아니라 '지옥도(地獄圖)'다.

 

  지옥도(地獄圖)

 

살아가 죄가 많으면 지옥엘 간다지

창자는 꺼내 소금에 절여지고

입술을 꿰어 묶이고

알몸으로 매달려 겨울바람 찬 눈에 살이 터지면

붉게 달궈진 석쇠에 얹혀 몸 비틀며 살 타는 냄새

갈기갈기 찢겨지고

냄새나는 이빨에 물려 질겅하고 씹히고 나서

알코올에 잠겨 굳은 몸 풀리면 토해진다지

살아서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길래

황태여

 

박상화, 동태, 푸른사상. 2019년. 76쪽.

 

이게 지옥이 아니고 뭔가. 이런 지옥에서 그나마 벗어나는 일, '황태'에서 '동태'로 가는 일이다. 자, 마음에 남아 있는, 내게 강렬한 인상을 준 '동태'란 시를 인용하며 맺는다.

 

   동태

 

동태는 강자였다 콘크리트 바닥에 메다꽂아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동태를 다루려면 도끼 같은 칼이어야만 했다

아름드리나무 밑둥을 통째로 자른 도마여야 했다

실패하면 손가락 하나 정도는 각오해야 했다

얼음 배긴 것들은 힘이 세다

물렁물렁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한때 명태였을지라도,

몰려다니지 않으면 살지 못하던 겁쟁이였더라도

뜬 눈 감지 못하는 동태가 된 지금은

다르다

길바닥에 놓여진 어머니의 삶을

단속반원이 걷어차는 순간

그놈 머리통을 시원하게 후려갈긴 건

단연 동태였다.

 

박상화, 동태, 푸른사상. 2019년.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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