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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들 - 장강명 연작소설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평점 :
연작소설이라고 하는데, 흔히 연작소설이라고 하면 단편 소설들을 모은 작품집을 말한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이 겹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사는 장소가 겹치든지, 여러가지로 인물들이 다른 소설에도 등장하거나 비슷한 사건, 배경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러한 연작소설 개념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등장인물들이 겹치는 경우는 없다. 장소는 겹치는 경우가 있지만(현수동 빵집 삼국지, 사람 사는 집, 모두 친절하다) 인물들은 서로 상관이 없다.
연작소설이라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지만 소설들은 모두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냥 독립적인 단편소설집이라고 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작가가 연작소설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소설집을 관통하는 흐름이 있다는 것, 그것을 파악해야 한다. 이것을 소설집 뒤에 있는 작가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모두, 친절하다」와 「공장 밖에서」를 발표하고 나서 '2010년대 한국에서 먹고사는 문제를 주제로 한 연작소설을 쓰자'고 마음먹게 됐습니다. 이후 4년 동안 느릿느릿 단편 여덟 편을 더 썼습니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매일 이야기하는 한낮의 노동과 경제 문제들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부조리하고 비인간적인 장면들을 단순히 전시하기보다는 왜, 어떻게, 그런 현장이 빚어졌는지를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공감 없는 이해는 자주 잔인해지고, 이해가 결여된 공감은 종종 공허해집니다. (379쪽)
이 말에 따르면 이 연작소설집을 관통하는 흐름은 바로 2010년대 우리 사회다.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우리 사회의 어떤 모습이 나타나 있을까? 총 10편의 소설인데, 살펴보기로 하자.
소설집은 크게 세 주제로 나누고 있다. '자르기, 싸우기, 버티기'다. 자르기는 노동 현장에서 밀려나는 사람들 이야기라고 한다면, 싸우기는 더 이상 밀려나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 이야기이고, 버티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다.
'자르기'라는 주제로 세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알바생 자르기, 대기발령, 공장 밖에서' 다들 밀려나는 사람을 중심에 두고 있다. 그럼에도 장강명 소설의 좋은 점은 일방적으로 어느 한편을 두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을 못하는 알바생을 자르지만, 알바생을 자르는 데도 절차가 필요하고, 고용하는 데도 법적인 의무가 있음을, 그것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을 겪는지를, 별 생각없이 고용하고 일 시키고 해고하는 과정을 통해서 잘 드러내고 있다.
'대기발령' 역시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대기발령은 나가라는 얘기다. 직접 해고 통보를 하지 않고 제 발로 사직서를 내게 만드는 것. 사람을 없는 존재로 취급해서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 지금도 경영진들이 종종 써먹는 방법이다. 그런데 대기발령을 받은 사람들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음을 소설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작가가 말한 '공감 없는 이해는 자주 잔인해지고, 이해가 결여된 공감은 종종 공허해'진다는 말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작가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그래서 소설을 읽는 재미가 있다.
'공장 밖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사무직과 생산직 어느 쪽으로 기울지 않는다. 두 쪽 다 사연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읽으면 어느 자동차 회사가 자연스레 떠오르는 소설인데,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들에게는 삶이 벼랑 끝에 매달린 상황이라는 것을 보여주는데, 그들을 '죽은 자'라고 한다면 정리해고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산 자들'이라고 하는데, 이들 역시 삶이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을 소설을 통해서 보게 된다.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싸우기'에는 '현수동 빵집 삼국지, 사람 사는 집, 카메라 테스트, 대외 활동의 신'이 수록되어 있다. 한 동네에 빵집이 세 곳이라면, 서로가 서로의 살을 갉아먹을 수밖에 없다.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에서 '일용할 양식'이라는 소설에서도 이런 갈등이 잘 드러나 있는데, 이번에는 더 심하다. 그때는 프랜차이즈는 거의 없었는데, 이제는 프랜차이즈가 들어와 자신들의 재량권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서로 경쟁하게 된다.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사람들이 생존을 걸고 경쟁하는 그런 모습. 지금 우리 사회 도처에서 만날 수 있는 장면이다.
'사람 사는 집'은 철거민을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일방적으로 철거민의 편을 들지 않는다. 그들에게도 다양한 욕망과 이익이 있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도 있음을, 하지만 그들이 쫓겨나는 것은 삶을 박탈하는 것임을 생각하게 한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의 모습, 소위 열정 페이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모습을 드러낸 소설이 이 부분 나머지 두 편의 소설이다. 참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으니 이들은 싸워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싸울 수밖에 없는 존재들. 201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버티기'에서는 '모두, 친절하다, 음악의 가격,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가 수록되어 있다. 이 부분은 살아가기 힘든 사회임에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이야기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서비스센터, 택배 등등) 사람들이 친절할 수밖에 없는, 소위 고객이라는 사람에게 절절매는 모습을 또다른 직장인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그래서 그들은 모두 친절할 수밖에 없는, 매뉴얼대로 움직여야 하는 현대인들의 모습. 씁쓸하다. 예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변화에 따라 예술가들도 그들의 사용가치가 아닌 교환가치로 평가받는 세상이 되었음을. 그럼에도 그들은 예술을 하고 살아가는 것을 포기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소설은 교육계 비리다. 이 비리에 대처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게 된다.
장강명 소설을 읽으며 작가의 말대로 2010년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렇다. 우리가 느끼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소설을 통해서 우리 눈앞에 펼쳐보이고 있다. 이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고. 이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살고 있다고.
작가의 감정을 인물들에 담지 않고 담담하게 인물들을 그 장소에 풀어놓는다. 인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냥 보여주고 있다. 그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를 파악하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이 소설을 읽는 우리는 '산 자들'에 속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산 자들'이라고 해도 안심하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가 없는 사회가 지금 우리 사회다.
우리'산 자들'은 뒤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죽어라고 달려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그런 사회였다. 죽어라고 달려야만 겨우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사회. 그런데, 그런 사회가 행복한 사회일까? 그것이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그래서 이 소설은 삶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어쩌면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 '음악의 가격'에 나와 있는 것처럼 우리는 사물의 가치가 아니라 우리 삶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모든 재화와 용역에 대한 무제한 스트리밍으로 접근할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사물의 가치를 평가하는 시스템을 다시 세울 수 있을 테니까. 공급량, 보완재, 대체재를 넘어서.
그러면 좋은 음악은, 다시 소중해질지도 몰라.' (335쪽)
그렇다. 우리 삶에 대한 가치에 대한 기준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이 연작소설집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들에게 삶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한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