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는 두 개의 주제를 축으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코로나 19를 겪는 우리들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6.2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째이기에 전쟁에 관련된 것들이다.
둘 다 아직 진행형이라고 해야 하니, 여전히 우리들 삶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은 확실하다.
코로나 19는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잦아들고 있고, 세계 최고의 방역 성과를 거두었다고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이 정도로 바이러스의 확산을 방지한 것은 대단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녹색평론에서 주장하듯이 확산 방지에 어느 정도 성공한 것이지 퇴치를 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세계화가 진행된 이 시대에 바이러스는 이제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국경을 모두 폐쇄하고 살아갈 수도 없다.
바로 여기에서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코로나 19가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다양한 변종들이 나올 거라고 예측을 하고, 백신이 개발되는 데는 1년 넘게 기다려야 하고,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또다른 바이러스들이 창궐할 수 있으니, 인간의 삶에서 바이러스는 사라질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바이러스가 없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으리라. 바이러스와 공존해 온 것이 인류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공존이 무너질 때가 있다. 그것은 지나치게 인류가 자연을 침범할 때 이루어진다.
어느 정도 경계를 지니고 공존해 왔던 존재들이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서로에게 치명적인 존재로 등장하게 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이런 생태계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나타났다는 것이 중론 아닌가.
야생박쥐나 그밖의 동물들이 인간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서식지를 파괴하자 인간이 살고 있는 곳으로 올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인간이 식용해왔던 동물들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그 바이러스가 인간에게까지 옮아오게 된다는 것.
그렇다면 코로나 19 바이러스와 같은 바이러스들을 퇴치하는 길은 백신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인류가 다른 존재들과 공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택해야 한다. 그래야만 바이러스가 지금처럼 치명적으로 전세계에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이후는 바로 우리 인류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점검하고 고민하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녹색평론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바이러스의 위협을 늘 느끼며 사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바이러스의 창궐로 어떤 사람들이 가장 피해를 입는지 살펴보는 것, 그들의 삶은 지금도 윤택하지 않기에 면역력도 많이 떨어져 있다는 것. 인류 전체의 면역력을 높이는 방법은 60%의 사람들이 감염돼 면역항체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건강하게 바꾸고 자연과 공존하면서 살아가는 방식을 익히는 데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172호다.
6.25전쟁, 한국전쟁, 다양한 이름이 있겠지만, 여전히 우리들 삶을 속박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전쟁이다. 벌써70년이 된다. 그런데도 정전, 휴전에서 평화 협정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단지 남북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한국전쟁과 미국(박인규)'이라는 글에서 알 수 있다.
전쟁으로 인한 분단도 한반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4자 회담이라든가 6자 회담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러나라들이 얽혀 있다. 세계적인 문제인 것이다. 여기에 가장 깊이 연관되어 있는 나라는 지금 미국이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분단에 깊이 관여되어 있기에 미국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평화를 이루어 나갈까 하는 데 중요한 지점이다.
이런 미국과 관련하여 한경직의 기독교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하는데, '한경직의 종교, 그 적폐의 기원 (김진호)'은 읽어볼 만하다. 한경직이라는 목사가 어떻게 우리나라 기독교계를 좌지우지할 정도가 되었는지, 또 한경직과 미국이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글이다.
바이러스든 전쟁이든 이제는 한 나라에서 끝나지 않는다. 세계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이런 초연결 사회에서 어떻게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게 하는 녹색평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