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우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8
샤를 보들레르 지음, 윤영애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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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산문시'라고 한다. 우리가 시라고 하면 대체로 운문이라고 하고 짧은 시를 떠올리는데, 산문시는 행과 연이 구분이 없는 좀 긴 시를 떠올린다. 여기에 서사기라고 하면 사건이 있는 소설과 비슷한 시라고 생각하고. 그런데 여기에 '소'자가 붙으면 작은 산문시, 또는 짧은 산문시라는 뜻이 될텐데... 그런 시 장르가 무엇인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이야기시' 또는 '담시' 아니면 '단편서사시'라는 개념이 있었다. 시에 이야기가 들어 있는 것이고, 그런 시를 통해서 소설에서 느꼈던 삶들을 시에서도 찾고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시들과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읽어보면 짧은 산문시도 있지만, 4쪽 정도에 걸치는 산문시도 있는데, 그것도 짧다고 해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시인이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을 형식으로 선택한 것이니, '소산문시'란 개념도 통할 수 있다고 인정하고 읽는다.

 

어떤 형식을 택하든 시인이 자신의 감정을 언어에 실어 표현하고 있는 것이 '시'고, 다른 글에 비하면 짧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보들레르의 시도 마찬가지다. 파리의 우울. 근대화된 도시 파리에서 시인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한 시다. 총 50편의 시가 모자이크 식으로 나열되어 있는데, 아르센 우세에게라는 프롤로그 격인 글이 있고, 마지막에는 에필로그가 있다.

 

시작과 끝 속에서 시들이 50편, 각자 제목을 달고 배치되어 있는데, 시인의 생각과 시인이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밝은 분위기와 어두운 분위기, 칭찬과 비난, 화려함과 비속함이 교묘하게 대비를 이루고 있는 시들이 많은데... 이 책은 시 한 편 한 편마다 주석을 달아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보들레르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자연스레 보들레르의 다른 작품들도 만나게 된다.

 

군중 속에서도 개인을 발견하는 존재.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는 존재. 자연스러움에 맞서 싸울 줄 아는 존재. 그래서 시인은 발전하는 도시 파리에서 우아하고 화려한 사람들을 보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소외된 사람들을 보게 되고, 자신과 소통할 수 없는 사람들에 절망하기도 한다.

 

이런 시인의 모습을 드러내는 구절들이 몇 있는데...

 

당신도 깨지는 듯한 유리 장수의 소리를 샹송으로 번역해 보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 않았소? 이 소리가 거리의 가장 높은 안개를 가로질러 다락방까지 보내는 모든 서글픈 암시들을 서정적 산문으로 표현해 보고 싶은 유혹을 말이오. (18쪽)

 

무자비한 마술사. 늘 이기는 자신만만한 라이벌, 자연이여, 나를 놓아주오! 나의 갈망과 나의 자부심을 시험하는 일을 그쳐주오! 아름다움의 탐구는 일종의 결투, 예술가는 두려움으로 비명을 지르며 패하고 마는. (31쪽)

 

시인은 거의 초자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영혼의 예외적 순간, 자연의 모든 사물로부터 '사물의 말 없는 언어'를 들을 수 있다. (주석에서. 42쪽)

 

시인은 제멋대로 자기 자신일 수도 있고, 동시에 타인이 될 수도 있는 비길 데 없이 훌륭한 특권을 누린다. 육체를 찾아 방황하는 넋처럼 그는 자신이 원할 때 다른 사람 속에 들어간다. 그에게만은 모든 것이 비어 있는 것과 같다. (75쪽)

 

인간이 악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약간의 가치가 있다. 가장 돌이킬 수 없는 악덕이란 어리석음에서 악을 저지르는 것이다. (174쪽)

 

열린 창문을 통해 밖에서 들여다보는 사람은 결코 닫힌 창문을 바라보는 사람이 발견하는 것만큼 많은 것을 보지 못한다. 촛불로 밝혀진 창문보다 더 깊고, 더 신비하고, 더 풍요하며, 더 어둡고, 동시에 더 눈부신 것은 없다. (214쪽)

 

이렇게 '파리의 우울'을 읽으며 보들레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됐다. 사실 보들레르의 작품은 읽어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의 이름은 많이 들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를 퇴폐, 세기말과 연결지어 생각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작품을 직접 읽어보니 그를 퇴폐와 세기말과 연결시키기보다는 세상을 좀더 깊이 있게 보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눈을 지닌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열린 창문을 통해서 세상을 본 것이 아니라 닫힌 창문을 통해서 본 것이리라. 또한 한낮의 뜨겁고 밝고 강한 태양 아래서 세상을 본 것이 아니라 어둡고 은은한 달빛을 통해 세상을 본 것이리라. 그렇게 느껴졌다.

 

그러므로 그의 시에서는 세상의 밝은 면을 이야기하더라도 꼭 어두운 면이 함께 나온다. 그런 존재들에 대한 애정이 시에서 묻어난다. 이렇게 세상은 어느 하나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밝음 속에 가려진 어둠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듯이.

 

이 '파리의 우울'을 읽어 보니 '악의 꽃'을 읽고 싶어졌다. 두 작품이면 보들레르를 만났다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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