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의 시 - 그때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
김승일 외 지음 / 돌베개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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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다. 큰제목은 물론 '교실의 시'이고. 교실과 시. 교실이라기보다는 학교라고 하는 편이 범위가 더 넓겠다. 사실 학교라고 하면 교실과 다른 장소 또 사람들까지 다양한 범주의 존재들을 아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꿈꾸던'이란 말을 통해 교실에서 미래를 꿈꾸던 시절을 회상하게 만든다. 회상 또는 추억이 대체로 아름다움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아름다운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 바로 교실이다.

 

어쩌면 군대를 갔다온 남자들이 군대를 떠올리기 싫어하는 것과 같이 대다수의 사람들은 중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기 싫어한다. 떠올리더라도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고통, 짜증, 어쩔 수 없음을 함께 떠올린다. 교육의 이념과 학교의 현실이 이렇게 극명하게 반대를 이루고 있기도 힘들텐데 말이다.

 

그만큼 학교는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장소이면서도 탈출하고자 하는 장소였던 것이다. 그런 학교를 대상으로 시인들이 쓴 시와 그 시에 어울리는 글들을 엮어 놓았다. 산문을 읽다보면 그 시가 어떻게 쓰였는지, 어떤 의도로 썼는지를 시인의 글을 통해 알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시인의 말을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 시인 역시 그것을 바라지도 않을 것이고. 그럼에도 시를 다양한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책 뒤 발문에도 나오지만 산문이 시를 더 다양하게 읽을 수 있게 해주지만 시에 속해 있는 것은 아니다.

 

시와 산문이 각자 존재하면서 또 함께 어울리고 있다. 그래서 시를 읽는 맛도, 산문을 읽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시인들이 겪었던 학교가 참 이렇게도 긍정적이지 않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민감한 사람들에게 학교란 공간은 얼마나 무미건조한 공간인지 시인들이 쓴 산문을 통해 다시 느낄 수 있다.

 

이 중에 오은이 쓴 '척 보면 척'이란 제목을 달고 있는 글에서 오은의 시와 산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학교가 정말로 '척'하는 자세를 몸에 배게 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남에게 자신을 보여주기를 강요하는 장소가 바로 학교 아니던가. 나를 찾아가는 과정보다는 남들이 내게 기대하는 나를 보여주는 과정이 더 많았던 학교 아닌가. 그 대표적인 공간이 교실이고. 그렇게 자신보다는 남 시선을 의식하게 만드는 공간에서 대다수의 사람이 12년을 보냈다는 사실.

 

'척'하다 보면 '다움'이 형성된다고 하는 말. 그렇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그렇게 끝까지 척만 하는 모습으로 굳어진 사람들도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그래, 학교는 적어도 '척'을 기대해서는 안 되지. '척'에 넘어가서도 안 되지. 정말로 '척'하다가 '다움'으로 굳어지면, 그렇게 성장하면 좋겠지만, 끝까지 '척'으로만 남으면, 정말로 그때 꿈꾸던 것들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냥 인생이라는 길에서 뱅글뱅글 돌고만 있는 것은 아닐까.  천천히 읽어보자. 청소년들이 읽기보다는 이미 그 과정을 거쳐서 그때를 돌아볼 수 있는 나이에 이른 사람들, 읽으면서 학창시절의 자신을 다시 불러낼 수 있다면 '그때의 자기'에서 '지금의 자기'를 더 잘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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