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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 역사학자의 토론과 해석
오수창 지음 / 그물 / 2020년 1월
평점 :
'춘향전'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졌으니. 적어도 춘향과 몽룡이라는 이름은 국민 거의가 알고 있다고 해야 할 듯. 아니 몽룡은 몰라도 변사또는 잘 알고 있을 듯.
고전소설이라고, 판소리계소설이라고 하는 작품 중에서 '심청전, 흥부전, 별주부전'과 함께 너무도 잘 알려진 소설이다. 그래서 고전문학자들이 춘향전을 가지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또 춘향전이란 작품이 구전되어 오면서 다양한 판본들을 남기기도 했고.
또 춘향전을 이어서 계속 소설을 쓰기도 했으니, 신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이해조의 '옥중화', 그리고 일제시대에 이광수가 쓴 '일설 춘향전'. 내가 알고 있는 최인훈의 작품 '춘향전', 김주영의 작품 '외설 춘향전' 등 너무도 다양한 춘향전 작품들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오수창은 책 뒷부분에서 이광수가 쓴 '일설 춘향전'을 분석하는 데 한 장을 할애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상반된 의견도 나오고 하나로 정리가 되지 않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역사학자인 오수창이 춘향전에 대한 책을 냈다. 역사학자의 토론과 해석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역사학자가 본 춘향전이다.
몇 가지 쟁점에 대해서 역사학자답게 역사 자료를 통해 분석을 해가고 있는데, 우선 춘향은 기생인가 아닌가에 대해서 오수창은 기생이라고 주장한다. 어느 판본을 읽어도 내용을 보면 기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특히 몽룡과 만나 대화하는 장면에서 기생임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으며, 신관사또와 대결할 때도 기생임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대를 여는 작품이다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춘향전은 기존 사회를 전복하려는 내용이 전혀 없다고, 기생이 수청을 거부한 것이 불법이 아니라는 전거를 들고 있다. 오히려 수령이 기생들에게 수청을 들라고 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 그런 행위를 해서 처벌 받은 수령도 있다는 것. 다만, 명문화된 법과 실제 행해지는 법은 달라서 대다수의 수령들은 기생들의 수청을 요구하고 받았다는 것.
하지만 명백히 법전에 의하면 관기로 하여금 수청을 들게 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것을 오수창은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불법을 저지른 것은 춘향이 아니라 신관사또라는 것. 결국 춘향은 기존 제도를 통해 저항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역사 자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든다. 대다수 백성들은 법전의 내용을 몰랐을 거고, 그들에게는 법보다는 주먹이 더 가까웠을 터이니, 수령들이 기생 수청을 받는 것이 다반사였던 상황에서 그것이 합법적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가정이지만. 그러니 수청 거부를 하는 춘향에게 관리에게 저항하는 민중의 모습을 읽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특히 이 책에서 저자가 여러 판본 중에 가장 나은 작품이라고 하는 '춘향전 완판 84장본'에 신관사또의 탐학이 표현되지 않았다고 하면 관기에게 무작정 수청을 들라고 하는 것 자체도 민중들에게는 거부감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 요즘 말로 하면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라 할 수 있는 그런 생각을 당시 민중들이 해서 춘향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러니 서민의식의 성장으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전망을 제시했다는 해석은 좀 무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암행어사가 봉고파직을 하는 장면은 조선의 법에 맞지 않는다는 것. 암행어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봉고'에 그친다는 것.
관료의 죄상을 적어 관찰사나 중앙정부에 보고하면 파직이나 그에 준하는 처벌은 왕을 통해 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럼에도 소설에서 '봉고파직' 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은 문학적 표현을 위한 장치임에 불과하다는 것.
여기에 낭청이라고 나오든, 회계나리로 나오는 사또들을 보조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이 인물들은 그냥 넘어갔었는데, 역사학자의 눈에는 조선 현실을 너무도 잘 표현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지방관료로 갈 때 관료들이 자신을 보조해줄 사람을 데리고 갔는데, 이는 엄연히 불법임에도 대부분 용인되고 있었다는 것. 그들은 그 관료를 보좌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니 청렴한 관료를 보좌하는 낭청은 떨어질 떡고물이 별로 없었을 터이고, 탐관오리를 보좌하는 낭청은 부정을 저지르기 쉬웠을 터. 낭청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회계나리라고도 표현하는데, 회계나리라는 표현은 지방 관료가 회계를 그에게 맡겼다는 것이니 부정을 저지를 수 있는 소지가 많고, 당연히 관료의 비위를 맞추어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을 표현하는 것은 당시 관료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하는 장치라는 것이다. 이 점은 새로 알게 된 내용인데...
이몽룡의 아버지는 나름 괜찮은 관료였기에 낭청이 힘없이 표현되기는 했지만 남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는 인물로 나오고, 신관사또의 낭청은 신관사또가 춘향과 대립하고 있기에 그 역시 부정적인 인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는 것. 춘향이 강하게 저항하는데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이 낭청이라는 인물임을 저자는 논거를 들어 주장하고 있다.
또 하나 역사학자가 알아낼 수 있는 춘향전에 숨겨진 다른 요소는 천자문에 관한 것. 조선시대에도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교육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주장이 많이 나왔다는 것. 그래서 이몽룡과 방자의 대화에서 천자문을 희화화 하는 것은 그런 의식들을 작품 속에 끌어들여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조선시대에는 한문교육을 받으면 당연히 천자문부터 시작하는 줄 알았는데, 천자문을 교육하는 것이 문제임을 지속적으로 지적해 왔다는 것을, 그래서 춘향전에서 방자와 몽룡이 천자문을 가지고 희롱하는 장면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그것도 이런 주장을 정약용이 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것을 춘향전이 체제를 전복하는 사상을 지닌 작품은 아니지만 대중들에게 지속적으로 읽힌 이유는 바로 인간성의 발견이고, 그 인간성을 짓밟으려는 강한 자에게 맞서 결국 승리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자는 춘향과 몽룡이 비록 신분은 다르지만 서로를 온전한 인간으로, 개인으로 인정했고 사랑했다고, 그런 쪽으로 시대가 흐르면서 춘향전의 다른 판본들이 발전해 왔다고 한다.
이미 온전한 개인으로 인정받고 사랑을 한 춘향이 신관사또로부터 기생이라는 신분의 사람, 즉 기생으로만 대우받는 것에 저항했다고 할 수 있다. 춘향전은 개인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겠고, 개인을 어떤 집단의 일원으로만 여기는 풍토는 이제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는 게 이 책을 읽은 내 느낌이다.
한번 자유를 맛본 사람은 부자유를 견딜 수 없듯이, 개인의 온전함을 인정받고 그렇게 지내왔던 춘향 역시 기생이라는 신분으로만 자신을 판단하고 대우하려는 신관사또의 처사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은 그래서 신분여하를 떠나 온전한 인간, 개성을 지닌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인정한 사랑을 이룬 사람이 그 사랑을 지켜나가려 저항하는 춘향이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학자들이 해석하는 춘향에서 그리 많이 벗어났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작품 내에서 표현된 내용들과 역사적 자료들을 통해서 춘향전에 나타난 춘향과 다른 인물들을 잘 설명해주고 있어서 춘향전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이다.
무엇보다도 작품 내용 속에서 해석의 요소를 찾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중요함을 깨닫게 해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