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베트의 만찬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이자크 디네센 지음, 추미옥 옮김, 노에미 비야무사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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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장미'를 읽으며 알게 된 책. 이런 소설이 있었다니, 아니 이 소설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니. 그것도 이 소설의 작가인 이자크 디네센이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원작이 된 소설을 쓴 사람이었다니. 그 작품의 주인공이 바로 자신의 이야기였다니. 이토록 유명한 작가를 지금에서야 알게 되다니...

 

해설에 실려 있는 헤밍웨이가 1954년 수상 소감으로 했다는 말. 그만큼 능력을 인정받은 작가다.

 

'이 상은 나보다는 다음 세 사람, 칼 샌드버그, 버나드 베렌슨, 그리고 아름다운 작가 이자크 디네센에게 돌아갔어야 한다' (318-319쪽)

 

이 소설집에는 총 5편의 소설이 묶여 있다. 바베트의 만찬을 비롯하여 폭풍우, 불멸의 이야기, 진주조개잡이, 반지가 실려 있는데, 하나같이 다 읽을 만하다. 재미도 있고, 상상을 넘어서는 이야기의 힘도 있다.

 

특히 '불멸의 이야기'에서는 이야기가 현실을 넘어서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고, '폭풍우'에서는 이야기가 현실로 들어왔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폭풍우'에 나오는 한 구절. 이것이 바로 이야기와 현실의 관계를, 우리가 이야기를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않고 현실로 받아들였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를 깨닫게 하고 있다.

 

'경험과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사랑에 빠진 젊은 여배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일상생활을 무대에 올려놓는 것은 모순이며 불경한 짓임을 안다. 그렇게 되면 무대가 일상을 한 차원 높게 승화시키기보다는 일상이 무대를 한 차원 낮게 끌어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은 온통 뒤죽박죽이 되고 말 것이었다.' (116-117쪽)

 

그렇다. 이야기는 이야기여야 한다. 이야기를 현실로 끌어오면 그때부터 비극이 시작된다. 그래서 이야기로만, 이야기를 현실로 가져오려 하지만 그것은 계속 이야기로 남게 되는 것을 '불멸의 이야기'라는 소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야기가 현실과 맞닥뜨렸을 때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을 '진주조개잡이'에서 엿볼 수 있으며, 주인공이 다른 이야기속으로 도피하면서 생활의 안정을 찾은 것을 그 소설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우리는 이야기 속에서 산다. 이야기를 들으며, 이야기를 만들며, 이야기를 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그것이 이야기라는 것을 인식한다.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야기가 현실과 착종이 되는 순간, 배우가 극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순간 비극은 시작된다. 이 소설집의 다른 소설들은 그런 이야기의 역할, 이야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좀 결이 다른 작품이 바로 '바베트의 만찬'이다. 하녀로 지내는 바베트가 복권에 당첨되어 만 프랑이라는 돈이 들어오자 주인들을 위해 만찬을 차리겠다고 한다. 검소하게 종교적 실천을 하며 살아왔던 주인들인 자매는 내켜하지 않지만 결국 바베트의 소원을 들어주고, 마을 사람들 역시 자매들의 말을 좇아 만찬에 참여한다.

 

음식은 화려하고 맛있고, 돈이 많이 든다. 바베트는 자신이 당첨된 일만 프랑을 모두 만찬을 차리는데 쓴다. 그런 바베트에게 자매는 "우리를 위해 가진 돈을 모두 쓰다니."(65쪽)라고 말하지만, 바베트는 "마님들을 위해서라구요? 아니에요. 저를 위해서였어요." (65쪽)라고 말한다.

 

왜? 바베트는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빵만이 아니라 장미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평생 가난하게 살려고, 바베트?" ... "아니에요. 전 절대로 가난하지 않아요. 저는 위대한 예술가라니까요. 위대한 예술가는 결코 가난하지 않아요. 마님. 예술가들에겐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어요." (66쪽)

 

그렇다. 우리는 모두 삶에서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전문적인 예술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우리들 삶 자체가 예술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 삶에서 빵만큼이나 장미도 중요한 것이고, 그 점을 소설 '바베트의 만찬'이 잘 보여주고 있다.

 

'바베트의 만찬'에서는 먹을거리만큼이나 우리들을 살리는 것은 바로 인간의 자존감이라는 것, 빵과 장미가 함께 해야지만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어떨 때는 빵보다는 장미가 더 중요하기도 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고, 나머지 작품들에서는 이야기의 힘을 생각하게 된다.

 

이자크 디네센은 천상 이야기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삶이 더 풍성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으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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