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 등장하는 수많은 꽃. 그 꽃들이 음식과 연결이 될 때도 있고 (목련보신탕, '밥을 딴다'라는 말, 장미전, 점심 꽃 등) 사람과 연결될 때도(봄꽃들, 봄밤의 냄새, 당신들이 꽃이에요 등) 있다.

 

  서로 다른 존재들을 연결해 내는 힘. 그들에게서 공통점을 보는 일. 그래서 우리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존재가 바로 시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따라서 시인은 어떤 존재도 허투루 보지 않는다. 어떤 존재에게도 온마음을 다해 눈길을 보낸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던 것을 보고, 인식하지 못하던 것을 인식하고 알려준다.

 

  그런 시들을 만나면 무척 반갑다. 그렇게 내 사고에 또 하나의 방향이 생긴다. 뇌에 주름이 하나 더 는다. 뇌는 유한 속에서 안으로 안으로 무한히 확장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시인은 유한한 존재에게 무한을 깨닫게 해주는 존재이다.

 

꽃하면 화사함, 젊음을 생각하는데, 문성해의 시집에서는 늙음도 생각하게 한다. 어쩌면 추레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화사함으로 바꿔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인은 한참 젊고 활기찬 젊음들에게서 꽃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그 이면을 바라보는 눈을 지니고 있다.

 

하여 '당신들이 꽃이에요'라는 시를 보면 마음이 찡해진다. 이런 꽃들을 꽃으로 생각하지 않고 지내오지 않았던가 반성도 하고.

 

    당신들이 꽃이에요

 

햇볕에 오글오글 쪼그리고 앉은 저 여인들

며칠 뒤면 시작되는 꽃 축제로 급하게 투입된 저 꽃들

호미와 모종삽을 든 꽃

저린 다리를 수시로 접었다 폈다 하는 꽃

작업반장의 눈을 피해 찔끔 하품을 하는 꽃

말속에 수만가지 생각이 들끓는 꽃

하루 삼만원 일당을 받는 꽃

그 일당으로 밀린 공과금 내고 나면 없다는 꽃

아직 다섯시간은 더 쪼그리고 일해야 하는 꽃 

누렇게 이가 썩고 입안에 하얀 구혈이 난 꽃

한번도 꽃인 적 없던 꽃들이

알록달록 차양 모자를 받쳐 쓰고

새로 외국에서 들여왔다는 꽃모종을 심고 있다

간들거리는 풀 모가지들을 바삐 땅에다 박아놓고

훌쩍 일어나서 점심 먹으로 가는

배꼽시계만큼은 오지게 울리는 꽃

꽃들의 훌쭉한 위장 속으로

밥덩이가 텅텅 굴러떨어지는 한낮이다

 

문성해. 입술을 건너간 이름, 창비. 2012년. 94쪽.

 

꽃에 묻혀 있던 꽃들을 발견해는 눈, 그리고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시인. 가히 이 시집의 제목처럼 '입술을 건너간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의 입술을 건너간 이름이 우리에게 당도해, 우리들 마음에 박힌다. 그렇게 꽃은 꽃만이 아니라 모두가 꽃일 수 있음을 알려준다.

 

'봄밤의 냄새'라는 시를 보면 시인이 말하는 꽃의 의미를 더 잘 느낄 수 있다.

 

  봄밤의 냄새

 

꼭 십구세만 말고

늙음이 만개할 때도 꽃이라 치자

꽃이 활짝 피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민경이 할머니 얼굴을 마주하면

묵은 향기에 내 옅은 졸음이 다 흔들리지

 

꽃받침이 꽃을 모시듯

차곡차곡 접혀진 목 위에서

주름진 얼굴이 송이째 웃을 때는

꽃송이가 쿵, 떨어질라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야 하지

 

어스름이 처마를 슬슬 내려앉는 시각

목련꽃들이 쉬 꽃잎을 접지 못하는 것과

마루에서 가갸거겨 한글공부 하던 민경이 할머니가

간혹 한숨을 쉬는 이유는 똑같은데

 

꽃이 꽃을 불러낸 듯

마당으로 내려선 민경이 할머니가

공중의 목련꽃들과 향기를 섞는

시큼덜큼한 봄밤이네

 

문성해. 입술을 건너간 이름, 창비. 40-41쪽.

 

이런 완벽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라니. 할머니의 얼굴이 꽃이라니. 그래 어디 젊음만이 꽃이랴. 이렇듯 신산한 삶을 살아온 사람의 얼굴 역시 꽃이다. 그런 곷들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세상은 꽃들의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

 

이런 물아일체의 모습을 잘 드러난 시가 '버들치야, 버들치야'란 시다. 꼭 꽃만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 또는 무생물과도 공감이 되는 그런 시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이 시집 첫시처럼 말이다. 첫시 제목이 '산수유국에 들다'다. 꽃들의 나라다. 식물로서의 꽃만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산수유국, 즉 꽃나라는 우리 모두가 만들어 낸 세상이다. 식물, 동물, 그리고 동물이지만 따로 구분해서 우리 인간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세상이 바로 꽃나라다.

 

이런 꽃나라 백성들, 그들이 바로 우리라는 것. 시인은 그렇게 꽃을 통해서 또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존재들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다.

 

기분좋은 일이다. 이런 시들을 읽는다는 것. 마음 속에 들어오는 다른 시들도 있다. 그 중에 '반딧불이'라는 시. 꼭 읽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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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5 22: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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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6 1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