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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평점 :
'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는 말이 있다.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자꾸 설명을 하려고 하는 경향을 일컫는 말이다. 리베카 솔닛이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제목이기도 하지만, 이 용어를 솔닛이 처음으로 쓴 것은 아니라고 한다. 어떤 책에선가 솔닛이 만들었다고 읽은 것도 같은데, 그것이 아니었다.
용어를 처음 만든 사람이 누군지보다 이 용어가 쓰인다는 사실은 그만큼 남녀가 동등하게 대화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현실의 심각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내 글이 발표된 직후에 '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는데, 가끔은 내가 그 말을 만든 사람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28쪽) ... 사실 나는 그 단어의 탄생과는 관계가 없다. 현실에서 그 개념을 구현한 남자들과 더불어 내 글이 그 단어의 탄생에 영감을 좀 준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29쪽)
이 책 첫번째 글이 바로 이것이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고. 세상에 솔닛 앞에서 솔닛이 쓴 책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기껏 리뷰를 본 주제에 남성이라는 이유로 여성 앞에서 한껏 젠 체하는 모습이라니... 자신이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군림하려는 남성의 모습이 지금껏 인류의 역사에서 흔하게 벌어진 일이다.
의식하지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말하는 남성들이 태반이었던 현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목소리를 내기 위해 여성들은 언어를 만들어내고 그 언어를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언어가 생기니 비로소 현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에는 폭력을 폭력이라고 인지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가정폭력, 부부강간, 데이트강간 등등 인지하지 못했던 폭력을 폭력으로 인지하고 처벌하는 풍토를 만들어가고 있다. 아직도 미진하긴 하지만. 강간문화라는 말이 이 현실을 얼마나 잘 표현하고 있는지. 반드시 우리가 없애야 할 문화 아니겠는가.
수많은 여성들이 당했던 폭력... 지금도 암묵적으로 이런 폭력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을 범죄라고 분명한 언어로 말하지 못하면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다. 폭력은 바로 그런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솔닛이 말하는 폭력은 바로 이렇다.
폭력은 타인을 침묵시키고, 타인의 목소리와 신뢰성을 부정하고, 내게 타인이 존재할 권리를 통제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한 방법이다. (18-19쪽)
어디서 여자가? 이런 말을 하는 남성들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바로 폭력이다. 이 말을 어디서 어린 것이? 라는 말로 바꿔도 마찬가지다. 또한 어디서 외국인이? 어디서 장애인이? 어디서 동성애자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역시 폭력이다.
이런 폭력은 사라져야 한다. 그 사라짐을 추구하는 운동이 바로 페미니즘이다. 하여 페미니즘은 결코 여성만의 운동이 아니다. 모든 배제되는 사람들의 운동이어야 한다. 아니 배제하든, 배제되든 모든 사람들의 운동이어야 한다. 그래야 함께 잘 살아갈 수가 있다. 솔닛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러니 성별로 인한 또는 젠더로 인한 차별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페미니즘은 인간 세상 전체를 바꾸려는 노력이다. (221쪽)
인종주의와 마찬가지로, 여성 혐오는 피해자들만 나서서는 제대로 처리할 수 없다. 이 점을 이해한 남자들은 페미니즘이 남성의 권리를 빼앗으려는 계략이 아니라 모두를 해방시키는 운동이라는 점도 이해한다. (225쪽)
이렇게 이야기 한 다음 우리가 벗어버려야 할 구속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단지 성(性)에 따른 차별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게 이 책이 지닌 장점이다.
우리가 해방되어야 할 구속은 또 있다. 경쟁과 냉혹함과 단기적 사고와 가혹한 개인주의를 높이 사는 체제, 환경파괴와 무제한 소비를 너무나 잘 뒷받침하는 체제, 한마디로 자본주의라고 불러도 무방한 체제이다. 이런 체제는 최악의 마초성을 현실로 구현하고, 지구에 존재하는 최선의 것들을 파괴한다.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이런 체제에 좀더 잘 적응하긴 하지만, 이 체제는 사실 둘 중 어느 쪽에도 진정으로 유익하지 않다. (225-226쪽)
그러니 페미니즘을 편협하게 보지 말자. 물론 당장은 불편할 수 있다. 인권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고 규제하게 되듯이 페미니즘을 알게 되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다른 성(性)들이 보인다.
여전히 그 길이 멀지만... 솔닛은 그 길을 이렇게 말한다.
여기 그 길이 있다. 천 마일은 될지도 모르는 기나긴 길이다. 이 길을 가는 여성은 채 1마일도 걷지 못했다. 그녀가 얼마나 더 가야 할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냐가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되돌아오진 않으리란 것은 안다. 그리고 그녀는 혼자 걷지 않는다. 수많은 남자, 여자 들, 그보다 더 흥미로운 다양한 젠더의 사람들이 함께할지 모른다. (227쪽)
이렇게 이 책은 함께 살아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미 한 번 내디딘 발걸음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다. 언어로 말해지는 많은 운동들, 그것들은 계속 전진할 것이다. 인류의 행복을 위해. 아니 우주적 존재들이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
누구나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이 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