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들 - 역사 테마 소설집 바다로 간 달팽이 9
강기희 외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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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들"

 

역사 테마 소설이라고 하는데, 제목이 참, 허균이 주장한 호민(豪民)도 아니고, 벌레라니. 제목과 역사가 잘 연결이 안 되었는데, 이 소설집 마지막에 실린 소설이 '벌레들'이란 제목을 갖고 있다. 뒤 설명에 의하면 '벌레들'은 '카프카의 여인'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약간 고친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벌레들은 카프카 소설 '변신'에 나오는 벌레를 의미한다. 그냥 벌레라는 단수가 아니라, 즉 그레고리 잠자가 아니라 그레고리 잠자인 것이다.

 

벌레 하면 떠올리는 것은 징그럽다, 우리와 다르다, 그래서 격리하거나 처치해야 한다 등등 부정적인 생각을 더 많이 하는데, 카프카 소설에서도 그렇다. 벌레가 된 잠자는 가족에게도 배척을 받고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

 

밀려나는 존재, 밀려나게끔 인식되는, 남들에게 함께 있어서는 안 될 존재로 여겨지는 그런 존재가 바로 벌레다. 벌레들이라고 하면 우리 역사에서 그만큼 밀려난 존재들을 의미하지 않을까? 그런데 누가 밀려났지?

 

그레고리 잠자가 누구인가? 평생 가족을 위해서 일만 한 존재 아닌가. 노동자 아닌가. 사회에서 위를 구성하지 못하고 밑을 구성하는 하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세상을 돌아가게 만드는 존재이지만 그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 아닌가.

 

역사를 구성하고,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살아남았던 민중들이 벌레들이란 말인가? 아니면 민중들을 벌레 취급하는 소위 지배층, 기득권층이 벌레들이란 말인가. 아니 인간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가 벌레들인데, 서로를 벌레라고 경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제목이다.

 

소설은 총 7편이 실려 있다. 우리 역사와 관련하여 우리들에게 비극으로 다가왔던 사건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단지 과거의 일을 반추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관련지어 소설은 전개된다. 역사는 과거에 끝난 사건이 아니라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삶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소설의 제목만 보고는 우리나라 역사의 어느 지점과 연결 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소설을 읽어 보아야 아, 그 사건이구나 할 수 있다. 그런 사건에 대해 알지 못했다면 소설을 마음으로 느끼는데 더한 수고를 해야 한다. (한편 한편 소설이 끝나면 그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설명이 실려 있다. 간략하게.. 더 알고 싶으면 수고를 더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앎에 대한 자세다)

 

이해를 통해 감상으로, 머리를 거쳐 가슴으로, 그리고 다시 발로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너무도 길다고 고 신영복 선생은 말했다. 그러나 소설을 읽는데 머리에조차도 도달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 역사 지식에 대해서 깜깜이인 사람이 천지다. 아무리 역사 교육을 강조해도 그것은 시험용일 뿐이다.

 

역사가 우리 삶에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시험지 속에, 책 속에 갇혀 있다. 그래서 이모양 이꼴이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역사는 역사, 현재는 현재, 그리고 도덕과 윤리는 책 속에만 있는 것. 역사에서 도대체 무엇을 배웠는지, 머리에도 닿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머리에 닿아야 그 다음에 가슴으로 가든지 말든지 할텐데...

 

이 소설을 읽으며 그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소설 속에 서술된 사건들이 여전히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이미 청산되어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는 이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제목을 보자. 그리고 어떤 역사적 사건인지 생각해 보자.

 

'동몽군, 빼앗긴 죽음, 손님, 어느 물푸레나무의 기억, 돼지 아빠, 붉고 푸른 못, 벌레들'

 

알 수 있는 사건이 있는가? 없어도 좋다. 소설이 역사를 직설적으로 드러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을 읽기 위해서도 역사 공부는 필요하다. 작품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도 그렇다.

 

동몽군... 동몽과 군이라는 말이 합쳐진 말. 동몽은 '동몽선습'이라는 책을 떠올리면 아이들이라는 (어린아이라기보다는 결혼을 하지 않은이라는 의미) 말을 의미한다고 유추할 수 있고, 군은 군대니까, 아이들로 이루어진 군대?

 

사람 대접을 받지 못했던 천민, 여인, 아이들도 동등한 인간임을 표방한 종교... 동학. 그렇다. 소설 '동몽군'은 동학혁명을 역사적 사건으로 삼고 있다. 이렇게 역사의 흐름 순으로 따라가면...

 

'빼앗긴 죽음'은 의열단원으로 일본 황궁 다리에 폭탄을 던졌으나 실패한 김지섭 열사의 이야기다. 죽음조차도 재판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빼앗길 수밖에 없었던 독립운동가의 비애. 영화 [동주]를 보면 진술서에 서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절차... 자신들을 합리화 하기 위한 그 절차에 옭아매인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 빼앗긴 죽음은 그래서 더 슬프다. 여전히 의열단 단장이었던 김원봉은 당당한 독립운동가로 훈장을 받지도 못하고 있다. 이 무슨 일이란 말인지...

 

'손님'? 혹 황석영의 '손님'을 읽은 사람은 6.25전쟁을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비슷하다. 역사적 배경이. 4.3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4.3에 대한 이야기는 직접적으로 서술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려면 4.3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현기영의 '순이 삼촌'이나 영화 [지슬]을 보면 이 소설에서 엄마가 왜 제주도에 가려고 하지 않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소설 속 인물, 새끼 무당이라고 불리는 명희 언니의 해원 장면에서 코 끝이 찡해질 것이다.

 

'어느 물푸레나무의 기억' 어찌 글로 서술할 수 있겠는가. 그 비참함을. 그 말도 안 됨을. 그런데도 그런 일이 일어났음을. 하여 소설가는 물푸레나무를 화자로 등장시킨다. 인간들이 하는 말도 안 되는 짓을 자연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 너무도 비참하고 비극적인 그 장면을 차마 사람의 말로 전하지 못하기에... 그렇게... 국민보도연맹 학살 사건을 다루고 있는 소설.

 

이념이 사람이 사람을 얼마나 잔인하게 죽이게 됐는지, 그렇게 죽어가면서도 자신을 죽이라고 명령한 사람 만세를 부르는 그 비극적인 상황. 도대체 이 무슨 비극이란 말인가. 우리 역사에서 이런 비극을 겪었으면서 왜 우리는 아직도 이념의 잣대를 들이댄단 말인가.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은 천연덕스럽게 하면서도 자신들의 이익에 맞춰 이념의 칼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우리 현실 아니던가.

 

'돼지 아빠' 부마항쟁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 부마항쟁이다. 그러나 이런 부마항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는지, 그 고통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음을, 이어서 '붉고 푸른 못'에서 박정희 아류인 전두환이 실시한 삼청교육대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이렇게 사람들 가슴에 붉고 푸른 못을 박았던 사람이 반성은커녕 오히려 더 큰소리를 치는 현실이 암담하다. 그걸 지켜보는 심정이 참 처연하다. 그런 존재를 처벌도 못하고 있는 이 현실이 더 슬프다.

 

마지막 '벌레들' 미선, 효순이 사건을 다루고 있다. 아니 미선, 효순이 사건이라기보다는 촛불 시위를 다루고 있다. 촛불 시위에 나온 사람들이 벌레들일지, 그것을 비꼬고 탄압하는 사람들이 벌레들일지... 아니면 그렇게 벌레들이라는 인식을 통해 서로가 다른 존재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인지...

 

하지만 카프카 소설에서 벌레는 애초에 사람이었다. 가정에서 사랑받고, 인정받는 존재. 우리가 벌레 취급하는 존재들도 처음부터 그런 존재는 아니다. 그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하여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 된 존재들은 대부분 약한 존재들이다. 사회에서 주류에 서지 못하고 비주류에 머물러 있는, 큰소리를 치기보다는 주로 당하는 그런 존재들. 하지만 그들도 그냥 '항민(恒民)'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들도 자기 목소리를 낸다. 이들은 '원민(怨民)'이 된다.

 

원민... 이 상태에 머무르면 자기들 억울함은 벗어날 수 있어도 다른 사람들의 억울함은 지속된다. 그러면 역사는 계속 반복된다. 약한 사람들은 계속 당할 수밖에 없다. 원민에 머무르지 않고 '호민(豪民)'으로 가야 한다. 그때서야 사회는 변하고,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아주 오래 전에 허균이 이미 '호민론'에서 전개한 논리다. 그 점을 이 테마 역사 소설집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머리를 깨우치자. 그리고 가슴으로 보내자. 가슴에서 다시 다리로 가게 하자. 순차적으로, 또 동시적으로.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자극하는 역사 알기, 그것이 바로 이런 역사 테마 소설을 읽는 일이다. 읽고 더 찾고 생각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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