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기의 힘이라는 꼭지로 여러 글이 실려 있다. 읽기 자체에도 엄청난 힘이 있는데, 함께 읽기는 더 많은 상승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혼자서 진리를 추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함께 진리를 추구한다면 진리에 다가가는 길이 단 하나가 아님을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교육은 홀로일 수 없다. 교육이라는 말에는 이미 '함께'라는 말이 들어 있다. 배우고자 하는 사람과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의 상호작용. 이것이 교육이다. 배움이라고 해도 좋다.
디지털 배움이라고 해도 컨텐츠 속에 이미 상호작용이 들어 있다. 누군가는 가르칠 목적으로 내용을 제공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통해서 배운다. 결국 '함께'할 수밖에 없다.
이미 낡을 대로 낡은 학교에 왜 청소년들이 다니는가? 탈학교 청소년들도 꽤 많아졌지만,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여전히 학교에 있다. 단지 부모들이 다녀야 한다고 해서? 갈 곳이 없어서?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함께'라는 말에 더 많은 이유가 담겨 있지 않을까 한다.
학교가 사교의 장, 수면이 장, 식사의 장으로 변했다고 하지만, 친구 만나 함께 먹고, 함께 놀고, 가끔은 졸거나 자기도 하는 장소가 바로 학교 아닌가. 그런 곳에서 '함께' 할 수밖에 없고, 그 함께 함 속에서 무언가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이렇듯 함께 지내는 시간 속에서도 배우는 것이 있는데, 함께 읽기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독서를 무척이나 강조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홀로 읽기가 아닌 함께 읽기를 강조하는 것이 당연한 흐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민들레처럼 스스로 서는 것을 강조해도, 서로를 살리는 교육이라는 말에서 이미 '함께'가 작동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함께 읽기, 그래서 다양함을 살리는 삶을 살아가기는 무척 중요하다.
그 점을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과연 우리나라 학생들이 책을 읽을 시간이 있을까? 그들에겐 여가 시간이 없다. 오로지 짜여진 시간표대로 움직일 뿐이다. 움직여야만 한다.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경쟁을 해서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공부.
그러니 책을 읽어도 함께 읽지 못한다. 그냥 점수를 따기 위해서 읽을 뿐이다. 좀더 좋다고 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수단, 자신의 생활기록부에 기록을 남기기 위한 수단으로 읽을 뿐이다. 여기에는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자 하는 욕구도 작동하지 않는다. 그냥 읽을 뿐이다.
함께 읽기라는 말이 얼마나 매혹적인가? 학창시절, 몇몇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함께 읽기는 해본 적이 없다. 아니, 학교 교육에 다양성이라는 말은 교과서에만 있는 말이다. 다양성을 추구하면 곧 제재가 들어온다. 다양함을 다양하게 살리는 일이 함께 읽기라면 학교가 추구하는 것과 이미 함께 읽기는 맞지 않는다.
마치 70-80년대 학교에서 책을 읽으면 공부 안 한다고 교사들에게 맞았던 것과 비슷하게... 읽어도 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읽어야 한다. 답을 만들기 위해 읽지 않는다. 함께 읽으며 답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있음을, 아니 꼭 답을 찾기 위해 읽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이런 비극적인 상황을 만들어낸 것은 바로 기성세대다. 이들은 불안해 한다. 학생들이 청소년들이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 좀더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지금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또 너무도 혼란스러워 보여도, 결국 그들이 자신들의 길을 갈 거라는 믿음이 부재한 세대가 바로 기성세대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기성세대는 끊임없이 답을 미래세대에게 강요한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등등...
이번 호에 나온 이 말이 그래서 더 마음에 다가온다.
청소년들은 미래를 미리 살 필요가 없다. 어른이 걱정을 그들에게 짐 지우지 말아야 한다. 어른들의 역할은 언젠가 어른이 될 그들의 현재를 온전히 지켜주기, 하나의 잣대로 그들을 평가하지 말고 함부로 개입하지 말기, 그리고 옆에 나란히 서서 그들이 걷는 스텝 한 발 한 발을 바라봐주기가 아닐까. 그래야 그들은 팔딱팔딱 살아 숨쉴 수 있다. (171쪽)
이 구절을 읽고 함께 읽기, 함께 살기, 함께 고민하기는 바로 어른들에게 필요한 일이 아닐까. 그래서 이번 호에서 어른들의 함께 읽기 모임에 대한 글들이 많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른이 되어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 함께 읽기, 함께 하기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이렇게 함께 읽는 어른들이 많아지면 청소년들을 좀 놓아줄 수 있지 않을까, 그냥 지켜보아주는 어른이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호 김달님이 쓴 '사랑으로 도착한 곳'은 깊은 울림을 준다. 어른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하기도 하고.
격월간 민들레는 그래서 함께 읽기가 더욱 필요한 책, 함께 읽고 함께 생각하고, 함께 말하고 함께 행동하는, 그렇다고 똑같이 살아가지는 않는, 다양한 삶을 추구하게 하는 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