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가 코 끝이 찡해지는 작품을 몇 만났다. 아니, 몇이 아니라 많은 시들이 코 끝을 찡하게 한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에 관한 시를 읽으면 그럴 수밖에 없다. 공부기계라는 말을 쓰기도 무색하게 점수기계, 입시기계가 되어버린 우리나라 청소년들.

 

  그들에게 개성이란 말은 사전에나 있는 말이다. 어떻게 개성을 찾을 수가 있을까? 시간이나 있나? 시간이 있더라도 누가 허용해 주는가?

 

  개성적이라는 말은 튄다는 말과 같고, 튄다는 말은 공부 안 한다는 말과 통하고, 교칙을 어긴다는 말과도 통하니, 개성은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다름'이 아니라 '틀림'이다.

 

그래서 이 시집에 있는 '틀린 그림 찾기'란 시를 보면 마음이 짠하다. 시인은 분명 '다른'이 아니라 '틀린'이라는 말을 썼다. 학교에서 다름은 틀림과 다르다고 가르치지만,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또 사회에서 청소년들에게 쓰는 말은 다름은 곧 틀림이다. 정답에서 벗어남이다. 그러니 이런 현실을 알고 있는 시인이 '다른 그림 찾기'란 말 대신 '틀린 그림 찾기'란 말을 썼을 것이다.

 

  틀린 그림 찾기

 

아침마다 교실에선 틀린 그림 찾기가 벌어진다.

교복에 넥타이를 매고

운동화 대신 실내화를 신고

머리를 물들이지 않고

얼굴에는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채

다 같은 그림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담임 선생님은 귀신같이

틀린 그림을 하고 있는 친구를 찾아낸다.

한눈에 척 틀린 그림을 찾아내는

고수의 눈길을 피할 도리가 없다.

그래도 다음 날 틀린 그림을 하고 있는 친구들은

담임 선생님을 도와주고 있는 게 분명하다.

틀림 그림 찾기가 취미인

담임 선생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보란 듯 립 틴트를 바르거나

실내화를 집에 감춰 두고 온다.

틀린 그림이 아니라 다른 그림일 뿐이라고

괜히 잘난 척했다가 벌점 먹은

세나가 오늘은 얌전한 그림을 하고 있더니

담임 선생님이 나가자 잽싸게

사물함에서 짧은 치마를 꺼내 온다.

 

박일환, 만렙을 찍을 때까지. 창비교육. 2019년. 72-73쪽.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지행불일치 교육. 너무도 철저하다. 교과서 내용과 전혀 다르게 학생들을 옥죄고 있는 현실. 다름은 없는 것이 바로 학교다. 오로지 정답과 오답만 있다. 다름은 오답이다. 틀림이다. 그러니 학교에서는 수많은 '틀린 그림 찾기'가 벌어진다.

 

이 상태로 나아가면 정답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굳어진다. 그렇게 나이를 먹고, 다름이 없는, 다름은 틀림이 되는 사회를 살아가게 된다. 그것이 무섭다. 그리고 서럽다. 이보다 더한 다름은 없다고 선언하는 모습이 담긴 시가 있다.

 

선생님께 드리는 서술형 문제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시간에 와서

  똑같은 교과서로 공부하고

  똑같은 문제로 시험을 보는데

  네 성적은 왜 이 모양이냐?

 

  위 선생님의 말을 토대로 하여 모든 학생들이 똑같은 점수를 받는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져서 누가 가장 곤란을 겪게 될지 50자 이내로 서술하시오.

 

박일환, 만렙을 찍을 때까지. 창비교육. 2019년. 12쪽,

 

마냥 웃으며 읽을 수만은 없는 시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 그런 모습이 일으키는 재앙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이 시에서 말하고 있지 않은가.

 

어찌 학생만이겠는가? 학교를 뛰쳐나온 청소년들도 이런 똑같음의 강요 속에서 살아가지 않는가. 그러니 다르다고 자시가 사는 세상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주장이 버젓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그런 세상에서 이 청소년시집은 다름이 사회를 더 풍요롭게 한다고. 다름은 오답이 아니라고, 제발 다름을 틀림으로 만들지 말라고 외치고 있다.

 

3부에 실린 시들. '다름'이 인정되는,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 사회들에 대한 시다. 읽으면 마음이 참 따뜻해진다.

 

다 좋다. 미처 알지 못했던 존재들도 만날 수 있고, 읽으면서 그렇구나 하는 마음, 마음 속에서 어떤 감동이 차오르는 경험을 할 수도 있는 시들이다. 청소년들이 읽으면 시를 통해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참고로 3부에 나온 시들을 열거해 본다. 한번 찾아 읽어 보시라. 이렇게 다르게 살아가는 존재들에 의해 세상은 조금 더 밝아지고 따스해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살구색의 탄생, 헛된 꿈은 없다, 어떤 열네 살, 마누엘라의 친구, 아름다운 시를 쓰는 나라, 첫눈을 사랑하는 나라, 처칠 클럽, 위대한 바보, 현대판 우공, 포탄 칼,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나라, 권정생 할아버지, 안아주고 싶다는 말 

 

이런 존재들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시인 역시 마찬가지 역할을 한다. 이런 시인들이 있기에 다름이 다름으로 존재할 수 있다. 정답과 오답만 있는 세상이 아니라, 다름이 다양하게 공존하는 사회. 그런 사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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