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동하던 모습을 잃고 굳어지면, 그 다음에 어떻게 될까?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넘어가면, 다른 쓸모가 있어야 하는데.

 

  자연은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넘어가도 자신의 역할을 한다. 쓸모없음이 쓸모있음으로 변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연이다.

 

  어떤 존재도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도 다른 존재들에게 어떤 이익을 주기도 한다. '밤나무 위에서 잠을 자다'란 시를 보면 그것을 극명하게 느낄 수 있다. 나무는 죽어서도 인간에게 따스함을 준다.

 

  그러면 인간은 어떤가? 인간이 남긴 것들이 어떤 쓸모가 있을까? 오히려 굳어져 화석이 되어 버리는 것 아닌지. 화석. 과거를 알려주는 존재. 그것 뿐이다. 특히, 인간의 말들이.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말들은 그대로 굳어질 뿐이다. 시인의 말은 더욱 그렇다. 세상을 따스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시인의 말일텐데, 시인의 말을 무슨 쓰레기처럼 그냥 버리고 만다. 시인의 말은 사람들 귀를 통해 마음에 도달하지 못하고, 화석이 되고 만다.

 

인간과 자연의 차이다. 어떻게 존재해야 할까? 신용목의 시집에 나온 밤나무와 시인의 말을 통해 생각해 보게 된다.

 

   밤나무 위에서 잠을 자다

 

오래된 밤나무를 패서 때던 저녁이 있었다

 

태풍이 핥고 간 밭가에서 바람의 혀를 물고 마르는 데 꼬박 일년이 걸렸다

 

두발 지게에 실려 밤나무가 나뭇간을 덮던 날

 

그 저녁 네칸집은 삼백일장 나무의 상여였다

취한 별들이 지붕에 문상객처럼 둘러앉았다

 

캄캄한 방고래를 지나며 나무는 제 둥치의 모양을 마지막 연기로 그려보고 있었다

 

밥물이 밤꽃처럼 흘러넘치는 저녁이 있었다

 

신용목,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창비. 2007년 초판 2쇄. 98쪽.

 

 

 

 

말의 퇴적층

 

내가 뱉은 말이

바닥에 흥건했다 누구의 귓속으로도

빨려들지 못했다 무언가 지나가면

반죽처럼 갈라져 사방벽에 파문을 새겼다

누구도 내 말을 몸속에 담아가려 하지 않았다

모두가 문을 닫고 사라졌으며

아무도 다시 들지 않았다 결국 나는

빈 방에서 혼잣말을 시작했다

뱉은 말은 바닥에서부터 차올랐고

이내 키를 넘었다 그때부터

나는 걷기를 포기했다 길고 부드러운 혀로

말의 반죽 속을 헤엄쳤다 와중에도

쉴새없이 말을 뱉었고 뱉을수록 한가득

된반죽처럼 뻑뻑해졌다

더러 문틈으로 바람이 불고 해가 비쳐

반죽은 딱딱하게 굳어갔다 나는 점점

움직이기 힘들었고 마침내

꼼짝할 수 없었다 말들이 마저

다 마르자 나는

풍문같이 화석이 되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마지막 순간 그 우연한 자세가

영원한 나의 육체였다

몇만년 후 지질학자는

말의 퇴적층에서 혀의 종족을 발견할 것이다

나는 멸망한 시인을 증명할 것이다

 

신용목,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창비. 2007년 초판 2쇄. 106-107쪽.

 

결국 순환이다. 순환은 닫힌 체계가 아니라 열린 체계다. 돌고 도는,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 자연이 순환을 멈추면 위험한 지경에 처하게 된다. 자연이 스스로 순환을 멈추는 경우는 없다.

 

인간이, 인간의 힘으로, 자연의 순환을 멈추고, 열린 체계를 닫힌 체계로 만들어 갈 뿐이다. 그리고 인간들 관계도 스스로 닫아버린다. 말이 돌고 돌아 살아 있지 못하고, 죽어 있게 된다. 한 곳에 머물고, 그곳에 쌓이고 굳어가게 된다. 시인의 말은 더더욱 그렇다. 마치 카산드라의 예언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 이 시대 시인의 말은.

 

신용목의 '말의 퇴적층'은 그런 모습을 너무도 잘 보여준다. 밤나무와 대비되게 시인의 말은 그렇게 화석이 되어버렸다. 시인은 '멸망한 시인을 증명할 것'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게 해야 한다. 그것이 시집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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