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집의 핵심은 '자서(自序)'다.
'시처럼 살고 싶은데 잘 안 된다. / 세상이 너무 걸리는 게 많기 때문이다. // 운명적인 것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오고……/ 가버린 날들은 그냥 바라만 봐야 한다. / 오랜만의 시집도 위안이 되지 못한다. // 먼 바다로 가 수평선이나 봤으면 좋겠다.'
시처럼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존재들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테고, 무심하게 지냈던 마음에 무언가를 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시처럼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꼭 시처럼 살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런 마음들이 삶을 시에 더 가까이 가게 한다. 삶들이 시가 될 수 있다.
시가 이슬처럼 찰나에 존재할지라도, 그 찰나에 사람에게 다가온다. 그런 존재, 그것이 바로 시여야 한다.
박찬 시집을 읽었다. 앞부분에 짧은 시들, 해탈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들이 시집 앞부분에 있고, 뒷부분에 가면 사랑을 노래하는 시들이 있다.
시는 곧 사랑이고, 해탈이다. 지금-여기에서 다른 곳을 바라보고, 꿈꾸는 것, 그것이 바로 시다. 그래서 시는 이슬처럼 우리에게 다가오기도 한다.
박찬의 시 '먼지 속 이슬'을 읽다.
먼지 속 이슬
- 화염길 그후
큰스님 오르시는 길, 비가 내린다
빗속에도 꺼지지 않는 파아란 불길.
하늘로 올라 이슬이 되어 먼지 위에 내려앉으시다.
박찬, 먼지 속 이슬, 문학동네. 2000년. 12쪽.
세상에 왔다가 떠나시는 큰스님. 오르는 길에 비가 내리지만 비는 불길을 꺼뜨리지 못한다. 그러나 큰스님은 그냥 오르기만 하지 않는다. 다시 내려오신다.
먼지 위에 살포시 이슬로 내려오신다. 그렇게 큰스님은 우리 곁을 떠나도 늘 우리 곁에 있다. 이것이 바로 시다.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