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집에서 많이 나오는 단어가 '오이디푸스나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도 아니고, 오이디푸스나무라니...
(내가 파버린 내 눈알이 열리는 오이디푸스나무, 번복하는 오이디푸스나무, 오이디푸스나무를 위한 정원사, 자라는 오이디푸스나무, 오이디푸스나무의 꽃, 오이디푸스나무와 죽은 고양이, 오이디푸스나무의 신발, 오이디푸스나무의 뼈, 오이디푸스나무)
'오이디푸스나무'라는 말이 들어간 시가 총 9편이 있는데, 시집 제목은 '오이디푸스'라는 말이 없는 '둥근 발작'이다.
오이디푸스가 누구인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사람.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되자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된 사람. 자신이 행한 행동에 책임을 진 사람. 부모를 위한다는 것이 부모를 죽이게 된 사람인데...
'오이디푸스나무'라는 말에서 죽음을 떠올린다. 뿌리를 제외하고, 하나의 줄기에서 여러 가지들이 분기되어 나온다. 부모에게서 자식들이 나오는 것. 자식들은 부모를 토대로, 부모에게서 영양을 받아 살아간다.
부모보다 더 크고자 하나, 클 수가 없다. 부모보다 커지는 순간 부모 가지는 부러지고, 자신도 역시 죽고 만다.
오이디푸스나무라는 말을 지닌 시들에서 나오는 것은 결국 하나의 죽음은 다른 존재의 죽음을 이끌어낸다.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것 아닐까?
서로 영향을, 영양을 주고받아 함께 자라는 것이 아니라 일방향인 것. 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부모고, 자식은 그대로 따라가는 것. 그래서 '오이디푸스나무'를 통해 이 세계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오이디푸스나무'와 비슷한 개념을 지닌 시로 '소파의 위치'라는 시가 떠올랐다. 상호작용 없이 그냥 일방향인, 한쪽만 보는, 그런 관계
소파의 위치
소파는
일방적으로 한쪽 벽에 놓였다
대화를 멈추고
내가 소파에 앉았다
대화가 없어서 푹신푹신했다
싸움을 멈추고
그가 소파에 앉았다
싸움이 없어서 폭신폭신했다
눈웃음을 멈추고
그녀가 소파에 앉았다
눈웃음이 없어서 둥글둥글했다
나는 나팔꽃처럼 눈부신 쪽을 편애했다
그는 나팔꽃처럼 눈부신 쪽을 편애했다
그녀는 나팔꽃처럼 눈부신 쪽을 편애했다
그들의 눈과 코와 입과 손가락은
일방적으로 기울고 있었다
소파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소파를 친친 감아올렸다
그들은
하나의 입을 피워내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의 항문을 피워내고 있었다
조말선, 둥근 발작, 창비. 2006년. 18-19쪽.
하늘을 향해, 빛을 향해 자라는 나뭇가지들. 이들도 역시 일방향이다. 이들 역시 일방적으로 기울고 있다.
이렇게 한 방향만 보고 있을 때 푹신푹신, 폭신폭신, 둥글둥글하겠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오이디푸스'처럼 행동하려 할 때, 그것을 막기 위해 발버둥을 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이 시집 제목이 된 '둥근 발작'이다. 사과를 예로 들고 있지만, 이것은 기성세대가 새로운 세대에게 가하는 폭력일 수도 있다.
몇몇 청소년들이, 또 청소년 작품들에서 어른들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 점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둥근 발작'은 섬뜩하면서도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뒤에 나오는 '가을'이라는 시가 실현되기 전이 아닐까. 그 단계까지는 가지 말아야지.
둥근 발작
사과 묘목을 심기 전에
굵은 철사줄과 말뚝으로 분위기를 장악하십시오
흰 사과꽃이 흩날리는 자유와
억압의 이중구조 안에서 신경증적인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곁가지가 뻗으면 반드시 철사줄에 동여매세요
자기 성향이 굳어지기 전에 굴종을 주입하세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장억제입니다
원예가의 눈높이 이상은 금물입니다
나를 닮도록 강요하세요
나무에서 인간으로 퇴화시키세요
안된다, 안된다, 안된다 부정하세요
단단한 돌처럼 사과가 주렁주렁 열릴 것입니다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억누르세요
뺨이 벌겋게 달아오를 것입니다
극심한 일교차가 당도를 결정한다면
극심한 감정교차는 빛깔을 결정합니다
폭염에는 모차르트를
우기에는 쇼스타코비치를 권합니다
한 가지 감상이 깊어지지 않도록 경계하세요
나른한 태양, 출중한 달빛, 잎을 들까부는 미풍
양질의 폭식은 품질을 저하시키는 원인입니다
위로 뻗을 때마다 쾅쾅 말뚝을 박으세요
열매가 풍성할수록 꽁꽁 철사줄에 동여매세요
자유와 억압의 이중구조 안에서 둥근 발작을 유도하세요
조말선, 둥근 발작, 창비. 2006년. 92-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