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꼭 "예수 천국/불신 지옥"을 떠오르게 한다. 비디오는 천국이다. 아니, 비디오는 지옥이다. 천국과 지옥을 모두 지니고 있는 존재가 비디오다.

 

  "예수 천국/불신 지옥"도 마찬가지 아닌가. 불신이라는 말이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의 말씀을 제대로 따르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말만 번드르하게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런 예수를 믿는다가 아니라,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는 살아가려 한다로 해석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결국 예수는 천국일 수밖에 없다. 불신이라는 말이 들어설 자리게 없게 된다. 이때는 불신이 아니라, 이미 예수와 관계 없는 삶을 사는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비디오/천국도 마찬가지 아닌가. 비디오가 보여주는 세상이 과연 천국일까? 아니다. 비디오는 우리 세상을 보여주는 도구라고 해야 한다. 비디오에서 보여주는 세상이 천국이라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고, 비디오가 보여주는 세상이 지옥이라면 우리가 피해야 할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비디오는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비디오에 자신을 온통 맡기는 것이 아니라, 비디오를 통해서 내 삶을 바라보는 것, 그때서야 비디오는 천국이 된다. 그렇지 않고 비디오에 빠져버리면 지옥이 된다.

 

내 삶을 스스로 지옥에 빠뜨리는 것이 된다. 80-90년대는 이렇게 비디오가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지금은? 비디오가 아니라 스마트폰이다. 손에 든 컴퓨터. 우리는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어놓지 않고 있다. 눈에서도 떼어놓지 않고 있다. 손에서, 눈에서 떼어놓더라도 마음은 스마트폰에 가 있다.

 

여기서 벗어나지 못할 때 우리는 '스마트폰/천국'이 아니라, '스마트폰/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지만 스마트폰은 비디오와는 다르다. 비디오는 폐쇄된 공간에서 볼 수밖에 없다. 소수의 사람들이 고립되어 고립된 공간에서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다. 쉽게 스스로를 유폐시킬 수 있다.

 

가령 하재봉의 이 시집에 있는 시 '비디오/처형'처럼 될 수 있다.

 

비디오/처형

 

일 년 동안 잠만 잤다

이 년 동안 텔레비전만 봤다 팔등신

미녀들의 벗은 몸매만 훔쳐보며 방안에서 뒹굴었다

삼 년 동안 나는,

 

신문도 보지 않았고

길가에서 최루탄이 매일 수천 개씩 터지는 줄도 몰랐으며

어떤 날은 한꺼번에 1,271명의 학생들이 무더기로

구속되는 줄도 몰랐다

관심도 없었다

 

머리가 둘이 달린 아이들이 태어나고

그 중에 몇몇은 일어나 걸어다니기도 전에

매맞아 죽고 가위눌려 죽고 물 먹다가 죽고 죽었다가 또 죽어

아무도 없는 나라가 완성되는 동안 나는,

뱃속에다 구더기만 채운 채

 

나의 알리바이

나는 무죄인가 나는

왜 교수형에 처해져야만 하는가

 

목을 자르면

몸통 속에는 똥만 차 있다

 

하재봉, 비디오/천국, 문학과지성사. 1992년 3쇄. 80-81쪽.

 

1980년대. 세상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우리 사회가 좀더 좋은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그러나 이런 시대 변화를 외면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사람도 있었다. 이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비디오/처형'이다.

 

비디오가 그런 역할을 했다면, 이때 비디오는 지옥이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외면하고, 손 안의 컴퓨터 속에만 갇혀 있다면 그때는 지옥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비디오와는 다르다.

 

닫힌 공간에서도 사용하지만, 열린 공간에서 더 많이 사용한다. 사람들을 열린 공간으로 불러내기도 한다. 순식간에.

 

미리 약속하지 않더라도 광장에 모인 사람들. 이들에게는 스마트폰이 있다. 이들을 열린 광장으로 불러내 열린 사회를 만들자고 함께 모이게 하는 것. 이때 스마트폰은 천국이다. 그렇게 지금은 예전 비디오의 역할을 스마트폰이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스마트폰을 천국이 되게 해야 한다. 예전 비디오처럼 닫힌 공간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열린 공간으로 나오게,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할 수 있는 존재가 되게 해야 한다.

 

하재봉 시집 '비디오/천국'을 읽으며 이 시집 전체를, 분위기를 바꿔 '스마트폰/천국'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할 때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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