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이 없는 문제, 교육!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 개개인의 욕망이 결합되어 있어 어느 하나의 정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교육이기 때문이다.

 

  백년 앞을 내다보는 교육정책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최소한 한 아이가 성년이 되는(20년이라고 하고 싶지만 요즘은 30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약관(弱冠)이 아니라 이립(而立)이 되어야 성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세월을 책임지는 교육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조령모개(朝令暮改)라는 말이 어울리는 요즘 교육정책이라는 생각이 들고, 또 교육에 관해서는 백인백색이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다양한 목소리들이 들리지만, 이들 주장의 최종 목적이 대학입시에 있는 것 아닌가, 대학입시에 있다는 것은 소위 명문대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것은 경제적으로든 풍요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작동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민들레] 125호를 읽으면서 [맹자]가 생각났다. 맹자에게 이로움을 묻는 양혜왕에게 왜 왕은 하필이면 이로움을 먼저 묻는가 하는 맹자. 어떻게 하면 인의를 실천할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하는데, 이익이라니?

 

교육도 마찬가지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배우는 것 아니겠는가. 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해서 배운다고 할 수 있는데... 교육정책들이 대학입시라는 이익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이익을 거부할 때 교육정책이 조령모개에서 벗어날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 점에서 학교 교육을 부정하던 대안교육이나 홈스쿨링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민들레] 이번 호에서는 대안교육도 다루고 있지만 주로 홈스쿨링을 다루고 있다. 홈스쿨링이 학교를 거부한다고 생각하지만, 학교라는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잘못 운용된 것에 대한 비판, 그리고 교육은 학교만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홈스쿨링도 잘못 운용되면 특정한 이념이나 부모들의 관점을 따르게 하는, 아이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 부작용도 있고, 아동학대를 감추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지금의 학교 교육이 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거의 20여 년이 지난 홈스쿨링을 한번 정리해줄 필요가 있는데, [민들레]가 이번 호에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홈스쿨링은 대학 입시를 목표로 삼고 있는 경우는 아주 적기 때문이다.

 

대학입시라는 목표를 다른 것으로 대체한다면 교육에서도 다양한 제도, 다양한 운용방식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대학에 목숨을 걸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2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대안학교나 홈스쿨링을 통해 이미 성년이 되어 사회에 자리잡은 사람들이 많을 텐데, 왜 아직도 우리 사회는 변하지 않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제도교육이 견고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지금은 우리 눈에 띠지 않을지 몰라도 이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그들도 만만치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민들레]가 20년을 지탱해 온 것도 바로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교육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우리 사회에서 합의가 되기 힘든 과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교육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미래가 걸린 일이기 때문이다.

 

[민들레]든 아니든, 다른 어떤 교육에 관한 책을 읽든,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결과를 요구하지 말고, 적어도 한 사람이 성년이 되는 시기를 책임지는 그런 교육을 할 수 있도록 각자의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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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6 08: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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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6 09: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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